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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높이 사설] [눈높이 사설]역사를 바꾼 ‘오월의 바람’
  • 어린이동아 취재팀
  • 2015-05-07 23: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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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둥 성 칭다오에 있는 ‘오월의 바람’

중국 산둥 성 칭다오엔 붉은 지붕의 유럽풍 건물이 많다. 과거 독일이 일시적으로 칭다오를 지배했던 아픈 역사의 흔적이다.

 

이 도시의 랜드마크(어떤 지역을 대표하거나 구별하게 하는 표지) 중 하나가 5·4광장에 있는 ‘오월의 바람’이다. 강렬한 붉은색으로 바람에 일어나는 횃불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높이 30m, 지름 27m의 조형물이다. 칭다오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중국인의 투쟁에서 큰 획을 그은 5·4운동의 배경이었음을 기억하도록 세워졌다.

 

5·4운동이란 1919년 5월 4일 중국 베이징의 학생들이 일으킨 항일(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움)운동이자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운동. 이날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약 3000명의 학생이 모였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의 전승국(전쟁에서 승리한 나라)들이 *파리 강화회의에서 전쟁 전에 독일이 갖고 있던 이권(이익을 얻는 권리)을 나누면서 일본의 ‘*21개조 요구’를 받아들인 탓에 칭다오 등 산둥반도의 주권을 중국이 되찾지 못한 것에 항의하는 시위였다.

 

화가 난 학생들은 “칭다오를 돌려 달라”는 요구를 하며 거리로 나섰고 상인, 노동자들이 적극 함께했다. 두 달간 22개 성, 200여 개 도시를 뒤흔든 시위는 중국에 사회주의를 널리 퍼뜨리는 계기가 됐다.

 

“조선은 독립을 도모하면서 독립하지 못하면 차라리 죽겠다고 말했다.”

 

당시 베이징 학생들은 선언문에서 5·4운동을 두 달 전 한국의 3·1운동에 비유했다. 훗날 중국 공산당을 만드는 것을 주도한 천두슈 등이 만든 ‘매주평론’은 3·1운동 기사를 전하며 조선의 독립운동이 중국 인민을 뒤흔든 최대의 사건이라고 평했다. 한국에선 일제의 3·1운동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건너가 5·4운동에 합류한 이들도 있었다.

 

“그날은 여느 때와는 달리 구름 한 점 없이 상쾌하도록 날씨가 맑았고, 바람도 없어서 베이징의 명물(어떤 지역의 이름난 사물)인 먼지도 일지 않았다.”

 

역사서에 기록된 5·4운동 당일의 실제 날씨다. 폭풍 직전의 고요였던 셈이다. 한 세기가 흐른 지금 동북아는 일본 때문에 다시 바람이 요동치려 하고 있다. 세 나라의 평화는 얼마나 세월이 더 가야 가능할 건가. 오월의 바람 속에서 ‘오늘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마음이 무겁다.

 

동아일보 5월 4일자 한기흥 논설위원 칼럼

 

※ 상식UP

 

제국주의: 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다른 나라나 민족을 정벌해 식민지로 삼는 침략주의적인 경향이나 국가 정책.

 

파리 강화회의: 제1차 세계대전에서 이긴 27개국의 대표가 프랑스 파리에 모여서 한 회의.

 

21개조 요구: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이 중국에 제출한 권익(권리와 그에 따르는 이익) 확대 요구사항. 이 때문에 중국에 반일 감정이 커졌으며 5·4운동이 일어났다.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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