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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속 인물의 초상화에 얽힌 비화… “내가 정말 이렇게 생겼다고?!”
  • 권세희 기자
  • 2024-04-21 1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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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끔찍하고 악의적이다.”


윈스턴 처칠(1874∼1965) 전 영국 총리가 너무도 싫어해 지하실에 숨겨뒀다가 끝내 불태워진 초상화(사람의 얼굴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의 습작(연습 삼아 짓거나 그린 작품)이 오는 6월 영국에서 경매에 나와요.


영국 가디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습작은 초상화를 그린 영국 화가 그레이엄 서덜랜드(1903∼1980)가 한 미술상(예술 작품을 사고파는 사람)에게 준 것. 이 미술상이 현재 소유주에게 그림을 넘겨주었고, 그가 이 그림을 경매에 내놓으면서 세상에 공개될 예정이지요.


이 그림으로 탄생한 초상화는 왜 불에 타서 사라졌을까요? 처칠의 사례를 비롯하여 역사 속 인물들의 초상화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알아보아요.




“내 얼굴, 이렇게 우울하다고?” 


서덜랜드가 그린 처칠의 초상화 습작. 가디언 홈페이지 캡처


처칠의 실제 모습. CNN 홈페이지 캡처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에 벌어진 세계적 규모의 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영국의 총리로 영국군을 지휘한 인물. 그는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 중 하나이지요.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의 나치에 의해 연합국이 패할 위기에 처하자 처칠은 미국을 설득시켜 무기 공급을 받았고 결국 영국을 지켜냈어요. 전쟁이 끝난 뒤 처칠은 전쟁에서 승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책을 펴내 195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지요.


이처럼 처칠은 인류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호락호락한 성품을 지닌 것은 아니라고 알려졌어요. 그의 불같은 성격을 알 수 있는 일화가 있어요. 1954년 11월 처칠의 팔순(80세)을 앞두고 서덜랜드가 그의 초상화를 그려 선보였어요. 하지만 처칠은 이 그림을 보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고 “끔찍하고 악의적”이라는 평가를 했다고 영국 일간 더 타임스 등 외신이 보도했지요. 그는 그림 속 자신이 늙고 우울하게 보이는 것에 충격을 받아 초상화를 지하실에 보관하다가 1년 뒤에는 아예 불태워버렸다고 전해져요.


이번에 경매에 나오는 초상화는 서덜랜드가 처칠의 초상화를 그리기 전 연습용으로 작업한 것. 경매 회사인 소더비의 안드레 즐라팅거 영국·아일랜드 현대미술국장은 “습작 속 처칠은 실물보다 부드럽게 표현됐으며, 권위적인 느낌도 덜 하다”고 평가했어요. 처칠이 생전 남겼던 말과는 사뭇 달라요.




“자세 취하기 너무 불편하네….”


사전트가 그린 루스벨트의 초상화. 루스벨트는 이 초상화를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위키피디아 제공


루스벨트가 손을 뻗고 있는 모습


미국의 제26대 대통령을 지낸 시어도어 루스벨트(1858∼1919)는 완벽한 공식 초상화를 남기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전해져요. 미국 백악관 역사협회에 따르면 1901년 9월 대통령으로 취임한 루스벨트는 자신의 공식 초상화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당대 최고의 실력을 갖춘 미국의 화가인 존 싱어 사전트(1856∼1925)에게 새롭게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지요.


초상화를 완성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어요. 사전트는 루스벨트에게 백악관 곳곳에서 “포즈를 잡아 달라”로 까다롭게 요구했는데 루스벨트는 이를 매우 귀찮아했어요. 결국 루스벨트는 “사전트는 뭘 그려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지적했고, 사전트는 “대통령은 멋진 포즈를 취할 줄 모른다”며 두 사람은 다퉜어요.


하지만 사전트는 훌륭한 화가였기 때문에 루스벨트가 그에게 화를 내는 순간조차도 놓치지 않고 포착했지요. 그 결과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계단에서 중심 기둥을 잡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루스벨트의 초상화가 탄생하게 됐어요. 사실 이 장면은 루스벨트가 사전트에게 “그만!”이라고 외치며 화를 내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것. 이렇게 완성된 초상화를 루스벨트는 매우 마음에 들어 했어요. 사전트가 그린 초상화는 1903년 4월 백악관 출입구에 걸리게 됐답니다.



“조금이라도 다르면 내가 아니다”


조선 제3대 임금인 태종(1367∼1422). 왕권 강화 정책을 추진하며 조선의 정치와 기틀을 닦은 왕으로 평가받는 태종은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불호령을 내렸다고 알려져요.


태종의 아들로 조선의 제4대 왕을 지낸 세종(1397∼1450)은 궁궐의 화가들에게 태종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그리라고 명령을 내렸고, 화가들은 성심성의껏 그림을 그렸지요. 하지만 이 그림을 본 태종의 반응은 차가웠어요. 세종실록(1444년 10월 22일)에 따르면 태종은 그림을 보고 “옛사람들은 ‘그림이 조금이라도 똑같지 않은 데가 있다면 나 자신이 아니다’라고 했다”며 “이를 불살라버리라”고 명령했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왕을 그린 그림인 어진조차도 마치 왕의 일부인 것처럼 극진히 다뤄졌기에 세종은 차마 아버지의 그림을 없애 버리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날 태종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조선 임금 어진은 전해지지 않고 있어요.



▶어린이동아 권세희 기자 ksh07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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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동1
    • studyking   2024-04-22

      이번에 경매로 나온다는 처칠의 초상화는 분명 처칠의 허락을 받고 나오는 작품이 아닙니다. 초상권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므로 돌아가신 분의 초상권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할 것 같습니다.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초상화가 이 세상에 나온 것을 처칠이 안다면 무척 화가 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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