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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직업 24시] [이 직업 24시]이진영 수석 통역사를 만나다
  • 어린이동아 취재팀
  • 2012-04-05 21: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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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는 화려한 직업? 꿈 깨 !!

 

김형근 군(왼쪽)과 한지윤 양이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최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수석통역사를 맡았던 이진영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수(가운데)를 만났다.

17년 동안 다양한 국제회의 현장을 누빈 이 교수가 모아온 명찰

최근 열린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세계 리더들의 통역을 진두지휘한 이진영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그는 1년에 100회 이상의 행사에서 통역을 하는 ‘베테랑’ 통역사다.

‘사전 공지제’를 통해 이진영 교수를 만나게 된 행운의 주인공은 김형근 군(서울 노원구 불암초 6)과 한지윤 양(경남 창원시 성주초 4). 이 교수와의 만남은 3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진행됐다.

 

●그들은 주인공, 통역사는 그림자!

 

“통역사는 어떤 직업인가요?”

김 군이 묻자 이 교수는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알고 있냐고 되물었다. 순간 당황한 김 군. “알고 있다”고 답하자 이 교수는 웃으면서 “그들은 주인공, 통역사는 그림자 같은 존재”라고 답했다.

“사람들은 단상 위의 연설자는 알아도 그들의 입과 귀가 되어주는 통역사는 잘 몰라요. 통역사는 이처럼 외롭답니다.”

국제회의에서 활동하는 통역사는 보통 회의장 뒤에 있는 작은 부스에서 홀로 통역을 한다. 부스 안에는 마이크와 헤드폰, 그리고 음량, 채널 등을 조절하는 기계가 있고, 통역사는 이 기계를 사용해 연사의 연설을 들으며 자신이 담당한 언어로 통역을 한다.

통역사는 세계 각국의 정상들을 만날 수 있는 화려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두 학생은 이 교수의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번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이 교수는 ‘수석 통역사’를 맡았다. 회의에서 사용되는 18개 언어의 통역을 총괄하고 54명의 통역사를 총지휘하는 역할. 국내에서 치러진 정상급 국제회의에서 한국인이 수석통역사를 맡은 건 처음이다. 전 세계 정상들의 화법을 꿰뚫는 실력, 수많은 국제회의를 거친 경험 덕분이다.

 

●말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요!

 

김 군과 한 양은 이 교수에게 통역사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순간 이 교수는 난감한 표정으로 “안 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스피치를 기막히게 잘 한다’ 정도로는 이야기 할 수 있어도 회의에서 있었던 일이나 통역을 맡았던 사람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할 수 없어요. 의사가 자신의 환자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과 같죠. 통역사의 직업윤리랍니다.”

이 교수는 대신 가장 인상 깊었던 회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2000년 일본 도쿄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시고가서 전쟁범죄의 책임을 묻는 국제법정의 통역을 한 적이 있어요. 시민단체들이 직접 모의재판을 기획하고 세계 각국의 판사들이 왔어요. 저를 비롯한 통역사들도 대가를 받지 않고 참여했죠. 일본의 종군위안부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일에 참여해 뿌듯했답니다.”

 

●집중력+체력+순발력 갖춰야

 

통역사가 꿈인 한 양에게 이 교수는 여러 가지 조언을 했다.

“여러 분야의 회의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경제, 금융, 과학, 법률 등 다방면의 지식을 공부해야 해요. 새로운 분야의 통역을 맡게 됐을 때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는 집중력과 각오도 필요하죠.”

이 교수는 ‘체력’도 강조했다.

“12시간 동안 밥도 못 먹고 부스 안에서 통역을 해야 하는 회의도 있어요. 이런 회의가 며칠동안 계속되죠. 몸이 튼튼해야 견디겠지요? 기억력과 순발력도 중요합니다.”

언어를 다루는 직업인만큼 유창한 외국어는 필수. 영어는 ‘꿈에서도 영어로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하고 대부분의 통역사가 영어를 기본으로 한 가지 외국어를 더 할 수 있다.

 

●디자이너에서 통역사가 되기까지

 

이 교수는 대학 졸업 후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세 명의 자녀를 낳으며 일을 그만 두었다. 하지만 37세에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해 지금은 우리나라 대표통역사가 됐다.

“어릴 때부터 하나의 꿈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저처럼 우연한 기회로 다른 꿈을 이룬 사람도 있어요.”

이 교수는 김 군과 한 양에게 ‘진로에 관해 열린 마음을 가지라’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평생직업’이 대부분이었죠. 요즘은 달라요. 한 사람이 여러 직업을 경험할 수도 있고 새로운 직업은 늘 생겨난답니다. 몇 십 년 전에는 국제회의 전문통역사라는 직업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에요.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진로를 설계하길 바라요.”

 

▶ 글 사진 손민지 기자 minji88@donga.com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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