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는 화려한 직업? 꿈 깨 !!
김형근 군(왼쪽)과 한지윤 양이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최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수석통역사를 맡았던 이진영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수(가운데)를 만났다. |
17년 동안 다양한 국제회의 현장을 누빈 이 교수가 모아온 명찰 |
최근 열린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세계 리더들의 통역을 진두지휘한 이진영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그는 1년에 100회 이상의 행사에서 통역을 하는 ‘베테랑’ 통역사다.
‘사전 공지제’를 통해 이진영 교수를 만나게 된 행운의 주인공은 김형근 군(서울 노원구 불암초 6)과 한지윤 양(경남 창원시 성주초 4). 이 교수와의 만남은 3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진행됐다.
●그들은 주인공, 통역사는 그림자!
“통역사는 어떤 직업인가요?”
김 군이 묻자 이 교수는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알고 있냐고 되물었다. 순간 당황한 김 군. “알고 있다”고 답하자 이 교수는 웃으면서 “그들은 주인공, 통역사는 그림자 같은 존재”라고 답했다.
“사람들은 단상 위의 연설자는 알아도 그들의 입과 귀가 되어주는 통역사는 잘 몰라요. 통역사는 이처럼 외롭답니다.”
국제회의에서 활동하는 통역사는 보통 회의장 뒤에 있는 작은 부스에서 홀로 통역을 한다. 부스 안에는 마이크와 헤드폰, 그리고 음량, 채널 등을 조절하는 기계가 있고, 통역사는 이 기계를 사용해 연사의 연설을 들으며 자신이 담당한 언어로 통역을 한다.
통역사는 세계 각국의 정상들을 만날 수 있는 화려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두 학생은 이 교수의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번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이 교수는 ‘수석 통역사’를 맡았다. 회의에서 사용되는 18개 언어의 통역을 총괄하고 54명의 통역사를 총지휘하는 역할. 국내에서 치러진 정상급 국제회의에서 한국인이 수석통역사를 맡은 건 처음이다. 전 세계 정상들의 화법을 꿰뚫는 실력, 수많은 국제회의를 거친 경험 덕분이다.
●말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요!
김 군과 한 양은 이 교수에게 통역사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순간 이 교수는 난감한 표정으로 “안 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스피치를 기막히게 잘 한다’ 정도로는 이야기 할 수 있어도 회의에서 있었던 일이나 통역을 맡았던 사람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할 수 없어요. 의사가 자신의 환자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과 같죠. 통역사의 직업윤리랍니다.”
이 교수는 대신 가장 인상 깊었던 회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2000년 일본 도쿄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시고가서 전쟁범죄의 책임을 묻는 국제법정의 통역을 한 적이 있어요. 시민단체들이 직접 모의재판을 기획하고 세계 각국의 판사들이 왔어요. 저를 비롯한 통역사들도 대가를 받지 않고 참여했죠. 일본의 종군위안부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일에 참여해 뿌듯했답니다.”
●집중력+체력+순발력 갖춰야
통역사가 꿈인 한 양에게 이 교수는 여러 가지 조언을 했다.
“여러 분야의 회의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경제, 금융, 과학, 법률 등 다방면의 지식을 공부해야 해요. 새로운 분야의 통역을 맡게 됐을 때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는 집중력과 각오도 필요하죠.”
이 교수는 ‘체력’도 강조했다.
“12시간 동안 밥도 못 먹고 부스 안에서 통역을 해야 하는 회의도 있어요. 이런 회의가 며칠동안 계속되죠. 몸이 튼튼해야 견디겠지요? 기억력과 순발력도 중요합니다.”
언어를 다루는 직업인만큼 유창한 외국어는 필수. 영어는 ‘꿈에서도 영어로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하고 대부분의 통역사가 영어를 기본으로 한 가지 외국어를 더 할 수 있다.
●디자이너에서 통역사가 되기까지
이 교수는 대학 졸업 후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세 명의 자녀를 낳으며 일을 그만 두었다. 하지만 37세에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해 지금은 우리나라 대표통역사가 됐다.
“어릴 때부터 하나의 꿈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저처럼 우연한 기회로 다른 꿈을 이룬 사람도 있어요.”
이 교수는 김 군과 한 양에게 ‘진로에 관해 열린 마음을 가지라’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평생직업’이 대부분이었죠. 요즘은 달라요. 한 사람이 여러 직업을 경험할 수도 있고 새로운 직업은 늘 생겨난답니다. 몇 십 년 전에는 국제회의 전문통역사라는 직업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에요.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진로를 설계하길 바라요.”
▶ 글 사진 손민지 기자 minji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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