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지난달 9일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전원이 12분 동안 끊긴 사고를 한 달 넘게 은폐*했다. 원자력 안전관리에 중대한 허점을 드러낸 심각한 사태다.
더구나 전원이 끊겼을 때 바로 작동해야 할 비상디젤발전기 두 대가 움직이지 않았고 최후 수단인 예비 비상발전기마저 먹통이었다. 긴급사태에 대비해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다던 한수원의 말을 믿을 수 없게 됐다.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사고 발생 15분 이내에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도 사고 소식은 한수원 최고책임자인 김종신 사장에게 보고가 되지 않았다. 김 사장이 사고를 안 것은 사고 한 달 후인 이달 11일이었다. 우연히 사건을 알게 된 지방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그때서야 직원들이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역시 한 달 넘게 아무것도 몰랐다. 보고를 하지 않은 담당 책임자는 그 사이 한수원 본사의 위기관리실장으로 영전*했다. 위기를 불러일으킨 사람을 위기관리를 책임지는 자리에 앉힌 것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인 고리1호기는 환경단체로부터 “문을 닫으라”는 요구를 끈질기게 받았다. 때문에 사고가 알려질 경우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요구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생각해 한수원 담당자들이 이 사실을 덮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투명한 보고로 국민의 불안감을 없애야 했다. 사고 은폐는 원자력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만 더 키울 뿐이다.
원전 당국은 안전수칙 및 보고의무를 위반했는지 철저히 조사해 관련자를 엄하게 문책해야 한다. 그러나 고리1호기를 폐쇄하느냐, 계속 가동하느냐의 문제는 전문가의 구체적인 검토를 거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동아일보 3월 15일자 사설]
▶ 정리=이지현 기자 edith@donga.com
◆ 어휘 UP
은폐(隱蔽): (어떤 사실을) 가리거나 숨김
영전(榮轉): 전보다 더 좋은 자리로 옮김
의구심(疑懼心):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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