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불이 난 경기 군포시의 한 아파트 단지. 외벽이 검게 그을려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아파트 입주자 화재 피난 행동 요령. 소방청 제공

[1] 아찔한 화재 현장엔 의인(의로운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에요. 경기 군포시의 불길이 치솟는 아파트에서 12층과 15층 베란다에 피신한 주민들을 구해낸 ‘사다리차 의인’, 서울 도봉구 쌍문동 아파트 화재 당시 집집이 돌며 잠자는 이웃을 깨운 ‘초인종 의인’, 밤 12시 무렵 치킨을 배달하다 경기 성남시 아파트에 난 불을 소화기로 끄고 사라진 ‘라이더 의인’ 등이 있지요. 18일 새벽 서울 강서구 방화동 영구임대 아파트 화재 현장엔 ‘맨발의 의인’이 있었어요.

[2] 15층짜리 복도식 아파트 6층에 사는 A씨(23)는 이날 새벽 출근 준비를 하다 타는 냄새를 맡고 불이 난 사실을 알았어요. 14층 거주자가 담뱃불을 붙이다 주변에 뿌려둔 살충제에 불똥이 튄 것. A씨는 화재경보기가 작동하기 전부터 소방차가 도착할 때까지 30분간 1∼13층을 두 차례 오르내리며 문을 두드리고 소리쳤어요. “불이 났어요. 빨리 대피하세요.” 그는 한 주민이 건넨 물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고 위아래층으로 뛰어다니느라 신발이 벗겨진 줄도 몰랐다고 해요.

[3] 고령자와 장애인 100여 가구를 포함해 150가구가 생활하는 이 아파트는 준공(공사를 다 마침)된 지 30년이 넘어 스프링클러(건물의 천장에 설치돼 자동으로 물을 뿜는 자동 소화 장치)가 없고 연기 확산을 막아줄 방화문(화재를 막기 위해 설치된 문으로 언제나 닫혀있어야 한다)도 열려 있었지만 숨지거나 다친 사람은 없었어요. 맨발의 의인이 신속하게 대피시킨 공이 클 거예요. 그는 3년 전 아버지를 여읜 후 어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공사장과 식당 등에서 일해 왔다고 해요. 지금은 이동통신 판매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요.

[4]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지만 아파트 화재 대비는 부실한 편이에요. 최근 1년 동안에만 아파트에서 299건의 불이 나 35명이 숨졌어요. 새벽 시간대에 불이 난 줄도 모르고 자다 대피가 늦어져 유독가스에 질식사한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인명 피해를 막으려면 ( ㉠ ) 인지, ( ㉡ ) 소화, ( ㉢ ) 대피가 필수적이에요. 하지만 소방차 출동 4건 중 1건이 화재경보기 오작동에 의한 것일 정도로 오작동이 잦다 보니 잘못 울린 줄 아는 경우가 많아요. 화재 초기 가장 효과적인 진압 설비인 스프링클러는 2005년에야 11층 이상 건물에 설치가 의무화됐어요. 아파트 화재 상황별 대피 요령을 아는 사람도 드물지요.

[5]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과 고령자들이 주로 사는 영구임대 아파트는 특히 화재에 취약해요. 실수로 불을 내기 쉽고, 불이 나면 빠르게 대피하기 어렵지요. 21일엔 방화동의 또 다른 임대아파트에서 정신지체 장애인이 실수로 불을 내 화상을 입었어요. 이런 영구임대 가구가 서울에만 2만여 개인데 99%는 스프링클러가 없어요. 용감한 의인이 없으면 꼼짝없이 화마(화재를 마귀에 비유한 말)에 갇혀야 하는 취약 주거지부터 대책을 세워야 해요.

동아일보 1월 23일 자 이진영 논설위원 칼럼 정리

※오늘은 동아일보 오피니언 면에 실린 칼럼을 사설 대신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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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동아 김재성 기자 kimjs6@donga.com, 남동연 기자 nam011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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