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침공을 받아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외교부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우크라이나 동부에 위치한 도시인 하르키우에 있는 ‘국립 식물 유전자 은행’이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포격(대포를 쏨)으로 우크라이나 최대 종자 은행 시설이 불에 타 보유하고 있는 종자 가운데 일부가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세계 각국은 식량이 되는 주요 작물 등의 종자를 소중하게 보관 중이다. 자연 재해나 핵전쟁, 테러 등으로 작물의 종자가 멸종될 위험에 대비해 종자 은행을 구축하는 것. 그러나 인간이 일으킨 전쟁이 미래를 책임지는 종자 은행을 위협하는 사례도 있다.


우크라이나의 하르키우에 있는 국립 식물 유전자 은행의 일부가 불에 탄 모습. 트위터 캡처​

우크라이나만의 문제는 아냐

우크라이나 국립 식물 유전자 은행은 세계에서 10번째로 큰 규모의 종자 은행으로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수집한 식물 종자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초 기준으로 식물 1802종에 대해 15만 점이 넘는 종자 자원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외교부는 최근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16만 점에 달하는 종자의 표본이 모두 불에 탔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과장된 수치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시사잡지 뉴스위크가 우크라이나 종자 은행의 세르게이 아브라멘코 연구원 등을 통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식물 종자 일부가 불에 탄 것은 맞지만 대부분의 종자 자원은 지하의 벙커(땅을 파서 만든 구덩이)에 안전하게 보전돼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적 곡창지대(곡식이 많이 나는 지대)로 지난해 기준 세계 6위의 밀 수출국이었다. 밀을 비롯해 우크라이나에서 자라는 작물의 종자를 보존하고 연구하는 종자 은행이 심하게 파괴되면 이 나라의 농업 경쟁력이 약화될 뿐 아니라 전 세계가 식량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ICARDA 관계자가 스발바르의 국제종자저장고에서 시리아 농작물의 종자 표본을 반출하고 있다.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 제공

내전으로 본부 옮긴 종자 은행도

세계의 종자 은행이 파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중동 나라 시리아의 북부 도시인 알레포에 본부를 뒀던 종자 은행인 국제건조지역농업연구센터(ICARDA)는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되고 이듬해인 2012년 전쟁의 여파로 문을 닫았다. 현재 ICARDA는 또 다른 중동 나라인 레바논 등으로 본부를 옮긴 상황이다.

내전으로 인해 시리아의 ICARDA 시설이 파괴되자 ICARDA는 지난 2015년 노르웨이령인 스발바르 제도에 있는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에 도움을 청했다.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에 맡겼던 11만 여 종의 종자 표본 중 일부를 돌려받은 것. ICARDA가 보관을 부탁했던 종자의 표본은 인류의 농경문화 발상지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생산되어 보존 가치가 뛰어나다고 여겨진다.

스발바르제도에 위치한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의 입구 전경. 위키피디아 제공

세계 최대의 종자 은행은?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종자 은행은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다. UN 아래 세계작물다양성재단(GCDT)이 2008년 세운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는 전 세계 1750개의 종자 은행이 보낸 씨앗 표본을 보관 중인 세계 최대 규모의 종자 은행이다. 2020년 기준 100만 종 이상의 씨앗 표본 5억 개 가량이 이곳에 보관됐다.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는 핵전쟁, 테러, 지진은 물론이고 소행성 충돌로부터 지구의 농작물을 보호할 수 있게 특수 설계됐다.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는 원칙적으로 인류의 식량이 되는 작물의 씨가 마르는 등의 큰 위기가 발생했을 때만 문을 열기로 예정돼있다.

우리나라의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도 2015년 설립된 종자보관소가 있다. 땅 밑 40m에 만들어진 터널형 보관소로 200만 개가 넘는 종자 표본을 보관할 수 있다. 길이는 127m이며 외벽 콘크리트의 두께만 60㎝에 달한다.​

▶어린이동아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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