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옻칠한 거문고 마을 “하얀 언덕 12번지?”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국에서 온 편지를 어머니로부터 전해 받고 한참 동안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지난 여름, 우리 어머니 친구이신 어머니를 따라 여름방학을 한국에서 보내기 위해 여동생과 함께 한국에 왔다가 만나게 된 미국에 사는 의영이 형이 보낸 편지였는데, 겉봉에 쓰여진 보낸 사람의 영문 주소가 초등학교 3학년인 내가 보아도 너무 쉬웠고 특이하였기 때문이다. “화이트 힐? 하얀 언덕?”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계속 머릿 속에서 의영이 형이 살고 있는 하얀 언덕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름답고 깨끗한 곳에 사는 형이 자꾸자꾸 부러웠다. “우리 마을 이름은 무슨 뜻을 가지고 있어요?” 맛있게 식사를 하시던 아버지는 조금 놀란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우리 마을 이름? 글쎄다. 무슨 뜻을 가지고 있을까?” “칠금동 이니까 금이 일곱개 나왔다는 말이 아닐까요?” “그건 아닐 거야.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곳에는 금이 나올 만한 금광이 전혀 없거든. 그러면 얼른 저녁을 다 먹고 한번 알아볼까?” “네, 그렇게 하도록 해요.” 먼저 동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우리 칠금동의 정확한 한자 이름과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칠금동의 칠자는 옻나무의 ‘옻 칠’자이고, 금자는 ‘거문고 금’자인데 아마 우리 마을 가까이에 있는 탄금대 산에 옻나무가 많이 있었고, 그 옻나무의 옻으로 옛날에 거문고를 많이 칠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은데, 저도 정확한 뜻은 잘 몰라요.” 당직 근무를 하시던 공무원 아저씨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려고 노력하셨지만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마을 이름의 뜻이 너무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왜 외국처럼 우리 나라도 마을 이름을 알기 쉬우면서도 아름답게 짓지 않을까요?” 난 낮에 받은 의영이 형의 편지를 아버지께 보여드리며 뜻이 어려운 우리나라의 마을 이름에 대해 투덜거렸다. “물론 나라마다 마을의 이름을 짓는 방식이 다 다르단다. 그리고 제각기 독특한 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좋고, 어느 것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알기 쉬운 마을 이름이 더 좋겠지. 가령 외국의 마을 이름 중에는 의영이가 살고 있는 ‘하얀 언덕’이라는 마을 이름이 있고, 리버사이드라고 해서 ‘강가’라는 뜻의 마을 이름도 있단다.” 또한 아버지는 우리나라가 쓰고 있는 많은 마을 이름 중에는 아직도 일본식 이름이 많다고도 하셨다. 나는 이왕이면 마을 이름을 지을 때에는 아름다운 우리말로 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의 역사와 전설,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듬뿍 표현한 이름으로 마을 이름을 정한다면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한 사랑이 새록새록 샘솟고 나아가 모든 국민의 국토사랑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옻칠한 거문고 마을.’ 이제부터 우리 마을을 그렇게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금동’이라는 이름보다 훨씬 더 다정해 보이고 자랑스럽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밖에 나가 자전거를 타고 우리 마을을, 아니 우리 ‘아름다운 옻칠한 거문고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참기로 했다. 지금은 밤이라 나 혼자 돌아다니기에는 무섭기 때문이다. ‘모두 나처럼 자기 마을을 아끼는 마음을 가진다면 깜깜한 밤이라도 무섭지는 않을텐데….’ 나는 오늘부터 ‘좋은 우리 마을 이름 알리기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아름다운 마을 이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더 이상 마을을 더럽히지 않고 잘 가꿀 것이고, 다른 마을 사람들도 아름다운 우리 마을 이름을 보고 즐겁게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하얀 언덕 12번지’에 살고 있는 의영이 형이 부럽지 않아졌다. 나에게도 ‘아름다운 옻칠한 거문고 마을’이 생겼기 때문이다. 홍낙원(충주 탄금초등학교 3-5)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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