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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예상/산문]300원만 더 있어도
  • 어린이동아 취재팀
  • 1997-12-19 15: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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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300원만 더 있어도

[문예상/산문]300원만 더 있어도

“아저씨, 이것 좀 보고 가시구려. 500원짜리 시금치가 싫으시면 애들 먹게 감이라도 사가시구려.” 아빠와 함께 시내에 나왔다가 지하 상가 입구를 지나는데 아주 작고 주름살 많은 할머니가 시들시들해진 시금치 몇 단을 들고 와서 아빠께 사달라고 매달리셨다. “됐어요, 할머니.” 하고 아빠는 내 손을 꼭 잡고 찻길을 건너려고 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신호등 앞까지 뽷아와서는, “아저씨, 아저씨.” 하고 부르는 것이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상가 입 구 앞 길거리에서 한쪽 구석 벽면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달라고 매달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 두 팔 벌려 안을 수 있는 작은 바구니 안에 담긴 감 몇 개, 배추 두세 포기, 시금치 몇 단이 가득 담겨 있는데 줄어들 줄을 몰랐다. 나는 신호등이 바뀔 때까지 멍하니 서서 할머니만 쳐다 보았다. 주머니에 들어 있는 100원짜리 동전 2개. 오늘따라 100원짜리 동전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평소에 내 과자 한 개값 밖에 안되는 작은 돈이었는데… 삼백원만 더 있어도….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시금치를 건네는 할머니의 모습을 뒤로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왜 오늘따라 이렇게 바람이 심술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자꾸 그 할머니 생각이 난다. 지금쯤 얼마나 파셨는지… 걱정이 된다. 혹시 하나도 못 팔고 아직도 밖에서 쪼그리고 앉아 계시는 건 아닌가 싶어 자꾸 100원짜리 동전 두 개만 만지작거렸다. ‘그런 시들시들한 시금치를 누가 산다고 저렇게 매달리는 걸까? 날씨도 추운데 밖에서 고생을 하면서까지.’ 처음 본 할머니인데 왜 자꾸 생각나고 걱정이 되는지 괜히 마음에도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이 다음에 커서 꼭 돈을 많이 벌 것이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쪼그리고 앉아 언 손을 후후 불어가며 장사하시는 할머니, 아무리 시들시들하고 맛이 없어도, 아니 먹고 싶지 않아도 몽땅 사서 할머니들이 굳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달라고 매달리지 않도록 할 것이다. 내일은 날씨가 제발 따뜻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리 창문이 덜컹거리는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박 영 주 (경기 안양 성수교 6)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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