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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보물찾기]익산 왕궁리 유적 역사이야기
무왕의 꿈 담긴 궁궐



일러스트 임성훈

2주에 한 번씩 ‘한국사 보물찾기’가 연재됩니다. 국보, 보물, 사적과 같은 우리 문화유산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알기 쉽게 풀이 해주는 코너입니다. 우리 문화유산도 배우고 한국사 상식을 쑥쑥 높여 보아요.

 

 

전북 익산시의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이 최근 일반에 전면 공개되었습니다. 궁궐 담장과 후원(정원) 구역의 정비를 마치고 공개한 것이지요.

 

익산 왕궁리 유적은 백제 30대 왕인 무왕(?∼641) 때에 지어진 왕궁의 터입니다. 남북으로는 약 490m, 동서로는 약 240m 직사각형 모양의 궁궐이지요. 이곳은 정원, 화장실 등 백제의 발전된 건축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지요.

 

그런데 의문이 듭니다. 왕이 사는 궁궐인 왕궁은 수도에 지어집니다. 백제의 수도는 한성(지금의 서울), 웅진(지금의 충남 공주시), 사비(지금의 충남 부여군) 이렇게 세 곳이었습니다. 익산은 백제의 수도가 아니었지요.

 

무왕은 어떤 생각으로 익산에 왕궁을 지었던 걸까요? 익산 왕궁리 유적의 역사이야기를 알아봅시다.

 

 

강력한 왕권 꿈꿨던 왕

 

익산 왕궁리 유적 전경. 뉴시스
 

백제는 고구려에 쫓겨 웅진으로, 재정비를 위해 사비로 도읍을 옮겼지요. 호탕한 성격이었던 무왕은 한반도를 호령하던 전성기 때의 백제를 되살리고 싶어 하던 왕이었습니다. 특히 신라에게 빼앗겼던 영토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요. 10여 차례 이상 군대를 일으켜 신라와 전투를 벌였고, 신라와 국경이 맞닿아 있는 지역의 성들을 보수해 국방을 강화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무왕이 익산에 왕궁을 지은 것을 두고 “무왕이 익산으로의 천도(수도를 옮김)를 꾀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귀족세력의 힘이 강했던 기존의 수도에서 벗어나 왕권을 강화하려는 계획이었지요.

 

무왕은 여느 왕처럼 어릴 적부터 왕궁에서 자라지 않았습니다. 무왕이 왕자 시절 궁 밖에서 마를 캐는 ‘서동’ 생활을 했다고 전하는 서동설화를 보면 알 수 있지요. 밖에서 생활하던 무왕이 왕이 되었을 때 궁 안에는 자신의 편이 별로 없었겠지요. 이에 무왕은 자신의 권력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대외적으로는 영토 전쟁을 활발하게 하고, 대내적으로는 새로 왕궁을 짓고 수도를 옮기려는 마음까지 먹었던 것입니다.

 

 

아름다운 정원, 거대한 화장실

 

익산 왕궁리 유적의 후원 터
 

익산 왕궁리 유적은 1989년부터 2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발굴을 벌였던 곳입니다. 그만큼 새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인 증거들이 많이 나왔지요. 발굴 초기에 학자들은 익산 왕궁리 유적을 왕궁이 아닌 불교 사찰로 추정했습니다. 5층 석탑이 우뚝 서있었기 때문이지요. 이곳에서 왕이 업무를 보는 건물인 정전의 터가 발견되고 평범하지 않은 유적과 유물이 나오면서 왕궁 또는 별궁(특별히 따로 지은 궁전)이었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유적이 귀한 금을 가공해 금목걸이, 금귀고리 등 장신구를 만드는 공간이었던 공방지입니다. 금은 무왕과 관련이 깊어요. 서동설화에 따르면 마를 캐던 서동이 신라 선화공주의 도움으로 엄청나게 쌓인 금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왕 자리에 올랐다고 하지요.

 

익산 왕궁리 유적의 후원은 백제가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정원을 꾸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여러 기이한 형태의 돌과 자갈을 이용해 주변의 풍경처럼 꾸미고 구불구불한 물길을 만들어 물이 흐르도록 만들었지요. 중국산으로 추정되는 돌들도 발굴되었습니다. 이런 백제의 정원양식은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전해집니다.

 

이곳에서는 거대한 화장실도 3개 발견되었어요. 길이 10.8m, 폭 1.8m, 깊이 3.4m인 대형 화장실이 있었다는 사실은 궁궐 안에서 많은 사람이 생활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김보민 기자 g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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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9 23:01:5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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