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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 & History]붓 1000자루 닳도록 완성한 글씨
  • 어린이동아 취재팀
  • 2015-11-11 05: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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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80호 세한도 그린 김정희

일러스트 임성훈

《 2주에 한 번씩 ‘한국사 보물찾기’가 연재됩니다. 국보, 보물, 사적과 같은 우리 문화재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알기 쉽게 풀이 해주는 코너입니다. 우리 문화재도 배우고 한국사 상식을 쑥쑥 높여 보아요. 》

 

“이 아이는 반드시 명필(名筆·매우 잘 쓴 글씨)로서 이름을 떨칠 것이다.”

 

조선 22대 왕인 정조 때 정승을 지낸 채제공이 일곱 살 어린이가 쓴 글씨를 보고 한 말입니다. ‘입춘대길(立春大吉·봄을 맞이해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람)’이라고 대문에 써 붙인 이는 바로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1786∼1856)입니다.

 

김정희는 ‘추사체’라는 자신만의 글씨체를 만들어냈으며, 국보 제180호 ‘세한도’와 같은 그림을 그리고 글쓰기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였지요. 또 금석학(금속과 돌에 새겨진 글을 연구하는 학문)에서도 업적을 남겼지요. ‘천재’라고 불린 김정희의 삶에 대해 알아봅시다.

 

김정희가 그린 국보 제180호 세한도. 문화재청 제공

청나라 학자에게 배워

 

어린 시절부터 빼어난 글씨로 주목을 받은 김정희는 학자인 박제가(1750∼1805) 아래서 학문을 배웁니다. 박제가는 청나라의 연경(지금의 베이징)에 여러 번 다녀와 발전된 문물을 보고 우리나라로 돌아온 실학자(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연구하는 이)입니다. 그는 “청나라의 발달된 문화를 배워야한다”라고 주장하던 ‘북학파’입니다.

 

이런 스승의 영향을 받은 김정희는 23세 때 청나라 사신으로 가는 아버지를 따라 연경으로 가지요. 연경에서 김정희는 청나라의 학자 옹방강과 완원을 만나게 됩니다. 둘은 학자이자 유명한 서예가였지요. 두 학자는 비석에 새겨진 글을 바탕으로 언어를 연구하는 ‘금석학’을 발전시킨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두 학자는 젊은 김정희의 글씨와 학문적 깊이에 놀라지요. 김정희는 완원을 존경한다는 의미로 완원의 이름에서 글자를 따와 지은 ‘완당’이라는 호를 즐겨 쓰게 됩니다.

 

30대에 벼슬길에 오른 김정희는 언관(임금에게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건의하는 일을 하는 관리), 암행어사(지방관리를 감찰하는 관리) 등의 관직을 맡아 일을 합니다. 이때는 왕의 친척 가문들이 권력을 잡고 휘두르던 시기였습니다.

 

김정희의 아버지인 김노경은 억울하게 반역(왕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으려 함)사건에 휘말려 벼슬을 빼앗기고 귀양을 가게 됩니다. 김정희는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여러 번 글을 써서 보냈지만 답이 없었지요.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왕이 지나는 골목에서 징과 꽹과리를 쳤지요.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김정희의 아버지는 멀리 전남 완도군의 섬인 고금도에서 1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게 되지요.

 

뼈 깎는 노력으로 만든 추사체

 

이로부터 10년이 지난 1840년, 이번에는 아버지가 누명을 썼던 사건에 김정희마저 휘말리게 됩니다. 관직에서 물러나고 제주도로 유배를 가지요. 1848년까지 제주도에 머무른 김정희는 이곳에서 뛰어난 작품들을 남깁니다.

 

우선 자신만의 독특한 글씨체인 ‘추사체’를 완성합니다. 추사체는 획의 굵고 가늘기의 차이를 많이 두며, 비뚤게 쓰는 것이 특징으로 강렬하고 역동적인 느낌을 줍니다. 김정희는 자신만의 글씨를 완성시키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평생 열 개의 벼루를 갈아 없애고 천여 자루의 붓을 다 닳게 했다’고 말할 정도지요.

 

세한도 또한 제주도에서 제자에게 글과 함께 그려준 그림입니다. 한 채의 집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소나무, 오른쪽에는 잣나무가 있습니다. 이 그림은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는 논어의 구절을 주제로 그린 것인데요. 추운 겨울처럼 힘들고 어려울 때 자신을 도와주는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빗대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원칙을 내세우는 대쪽같은 성격이었던 김정희는 세력을 잡고 있던 안동 김 씨들에게 미움을 사 1851년 다시 함경도로 유배를 갑니다. 이듬해 풀려난 김정희는 경기 과천시에서 살다가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지요.

 

▶김보민 기자 gomin@donga.com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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