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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발백중’ 여성 저격수 실제로 있었다
  • 어린이동아 취재팀
  • 2015-08-18 22:3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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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 속 독립운동가 이야기

영화 ‘암살’에서 저격을 준비하는 안옥윤. 쇼박스 제공

최근 1000만 관객을 넘기며 큰 인기인 영화 ‘암살’(15세 이상 관람 가).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 독립운동가들의 일제 고위관료 및 친일파 암살(사람을 몰래 숨지게 함) 작전을 담았다.

 

영화 속 인물들은 김구와 김원봉을 제외하고 모두 허구로 만들어진 인물.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는 나라를 찾기 위해 영화 속 인물들처럼 몸 바쳐 싸운 독립운동가가 많았다. 광복 70주년에 나온 이 영화를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이 주목받고 있다.

 

영화 속 인물과 가장 닮은 실존 독립운동가는 누구일까? 또 영화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우두머리로 나오는 김원봉(1898∼1958)과 김구(1876∼1949)는 누구일까? 영화 속 인물을 바탕으로 실존 독립운동가에 대해 알아보자.

 

영화 속 안옥윤(왼쪽)과 독립운동가 남자현. 동아일보 자료사진

‘여자 안중근’ 남자현

 

영화 속에서 백발백중(백 번 쏘아 백 번 맞힘)의 저격 실력을 보여준 여성 대장 안옥윤. 일제강점기 때도 안옥윤처럼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가 실제로 있었을까?

 

안옥윤은 남자현(1872∼1933)과 이화림(1906∼?)을 닮았다. ‘여자 안중근’으로 불렸던 남자현은 안옥윤처럼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제 고위관료 암살 작전에 투입됐다. 그러나 1933년 일본 장교인 부토 노부요시를 저격하는 과정에서 일제에 붙잡히고 말았다.

 

이화림 역시 저격 실력이 뛰어났던 여성 독립운동가. 그는 비밀독립운동단체인 한인애국단에서 사격과 무술을 배웠고 1932년 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 의사(1901∼1932)와 일왕의 생일에 도시락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1908∼1932)와도 함께 작전을 수행했다. 영화에서 안옥윤은 ‘하와이 피스톨’과 부부로 가장해 위기를 넘기는데, 이화림과 윤봉길도 부부인 척하며 도시락 폭탄 작전에 뛰어들었다.

 

영화 속 속사포(왼쪽)와 김경천 장군

속사포는 누구?

 

영화에서는 ‘속사포’라는 별명을 가진 독립운동가가 나온다. 속사포는 ‘기관총’을 이르는 말. 뛰어난 저격 실력을 보여줬던 속사포의 모습은 김경천 장군(1888∼1942)과 많이 닮았다. 김경천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거친 실력 있는 군인. 특히 총을 다루는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

 

영화 속 속사포는 신흥무관학교의 마지막 졸업생.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항일운동을 펼치는 우수한 군인을 키우기 위해 세워진 학교다. 하지만 일본의 감시 때문에 ‘무관학교’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고 ‘신흥중학교’나 ‘신흥강습소’로 불렸다. 김경천은 3·1운동이 일어난 후 중국 만주(오늘날 중국의 동북부 지역)로 가서 신흥무관학교 교관을 맡았다.

 

영화 속에서 속사포는 ‘낙엽이 지기 전 무기를 구해 압록강을 건너고 싶다’는 내용을 결의문에 남긴다. 이는 김경천의 일기인 ‘경천아일록’에 등장하는 말. ‘가을이 가기 전에 독립을 위해 싸우고 싶다’는 굳은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영화 속 김원봉(왼쪽)과 실제 김원봉
 
영화 속 김구(왼쪽)와 실제 김구

‘독립군 우두머리’ 김구·김원봉

 

영화에 나온 실존인물인 김원봉과 김구는 독립운동의 주축이었다. 김원봉은 1919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을 만들어 23차례 이상 일본군 및 친일파 제거 작전을 펼쳤다. 한인애국단의 중심인물인 김구는 이봉창과 윤봉길 의거(의로운 일) 등을 주도적으로 지휘했다.

 

영화에서처럼 두 사람은 1933년에 만났을까? 당시 김구는 중국 상하이에서, 김원봉은 중국 난징에서 활동했다. 두 지역의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실제로 만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두 사람은 독립운동 방식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달랐다. 한반도 독립을 위해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임시정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김구와 달리 김원봉은 임시정부가 중심이 되어 독립운동을 펼치는 것을 반대했다.

 

두 사람이 힘을 모아 독립운동을 펼친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1940년 중국 충칭에서 만든 한국광복군 활동이다. 당시 김구는 한국광복군의 우두머리였고, 김원봉은 1942년에 한국광복군의 부사령관으로 들어왔다.

 

▶정민아 기자 mina@donga.com

 

도움말=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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