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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의 품에 안긴 ‘세한도’는 어떤 작품?
  • 장진희 기자
  • 2020-12-15 12:4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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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품에 안긴 ‘세한도’는 어떤 작품?


추사 김정희가 남긴 ‘세한도(국보 제180호)’.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코로나19로 더욱 추운 겨울이지만, 견뎌보자.”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꼿꼿이 선 그림 속 소나무와 잣나무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국보 제180호인 ‘세한도’는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인 추사 김정희(1786~1856)가 1844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중 남긴 그림이다. 벽에 뻥 뚫린 구멍이 있는 허름한 집을 가운데 두고 양옆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대칭을 이루고 있다. ‘세한’(매우 심한 한겨울의 추위)에 굴하지 않고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세한도의 소나무와 잣나무는 올곧은 선비의 정신을 상징한다.

개인 소장품이었던 세한도는 올해 초 국민의 것이 됐다. 미술품 소장가 손창근 씨(91)가 대를 이어 간직했던 세한도를 지난 2월 국립중앙박물관(서울 용산구)에 기증한 것. 세한도를 비롯해 평생 소장한 문화재 300여 점을 조건 없이 나라에 기증한 공로를 인정받아 손 씨는 문화훈장 중 최고 영예(영광스러운 명예)인 금관문화훈장을 최근 받았다. 2004년 ‘문화유산보호 유공’ 포상이 별도로 제정된 이래 이 부문에서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것은 손 씨가 처음이다.

숱한 문화재를 기증한 손 씨가 가장 아꼈던 세한도는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줄까. 세한도에 얽힌 이야기에 대해 알아보자.


추사 김정희의 초상화. 문화재청 제공​


시린 겨울 견디는 송백 같은 친구여

‘무가지보(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보물).’

세한도를 보유하게 된 국립중앙박물관은 그림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세한도는 그저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그에 담긴 의미가 더욱 각별한 작품이다. 김정희는 제주도로 유배(죄인을 귀양 보냄)된 자신을 잊지 않고 청나라에 갈 때마다 귀한 책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에 고마운 마음을 담아 세한도를 선물했다. 30대에 벼슬길에 오른 김정희는 50대에 누명을 쓰고 제주도로 쫓겨났다. 그는 홀로 지내는 스승에 변함없는 정과 의리를 보여준 이상적의 인품(사람의 됨됨이)을 겨울철 푸른 나무에 비유했다.


세한도와 이에 덧붙은 문인들의 감상평이 지난달 국립중앙박물관(서울 용산구)에서 언론에 공개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김정희가 이상적에 보냈던 세한도의 크기는 가로 70㎝, 세로 33.5㎝다. 이상적은 청나라에 사신으로 가며 스승 김정희의 그림을 선보였다. 이에 감탄한 당시 청나라 문인 16명과 근현대의 이시영, 오세창 등 한국인 4명이 세한도에 덧붙인 감상평도 국보에 올라있다. 감상평까지 합치면 세한도는 14m가 넘는 대작. 지난달 시작한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에 선보인 세한도와 감상문이 담긴 두루마리는 내년 1월 23일까지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며 박물관은 지난 8일부터 임시 휴관해 지금은 직접 보기 어렵게 됐다.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송백(소나무와 잣나무)이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고 김정희는 중국의 고전 ‘논어’에서 따온 구절을 세한도에 썼다. 어려운 상황을 겪으면서 친구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로 보인다. 세한도 오른쪽 아래에는 ‘장무상망’이라는 낙관이 찍혀있다. 낙관은 글씨·그림을 완성하고 작품에 찍는 도장이다. 장무상망은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 김정희가 제자 이상적을 얼마나 아꼈는지 드러난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유출된 세한도를 찾아온 소전 손재형(왼쪽)과 나라에 세한도를 기증해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손창근 씨. 동아일보 자료사진


고향에 와서 국민의 품에 안기기까지…

세상의 빛을 본지 180년 가까이 된 세한도가 국민의 품에 안기기까지의 사연은 절절하다. 이상적이 남긴 세한도는 그가 숨진 뒤 제자였던 김병선에 넘어갔다. 이후 친일파인 민영휘 집안에 세한도가 전해졌다. 민영휘의 아들이 1930년대에 세한도의 가치를 알아본 일본인 수집가에게 그림을 팔았다고 전해진다.

이 사실을 안 서예가인 소전 손재형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4년, 아수라장이 된 일본 도쿄에서 손재형은 세한도 소장자를 만나 한 달 넘게 온 마음을 다해 설득했다고 한다. 결국 일본인 소장자는 세한도를 손재형에 넘겼고, 소중한 문화유산이 우리나라로 돌아올 수 있게 됐다.

개성 출신의 수집가 손세기는 1971년 손재형이 내놓은 세한도를 사들이며 대를 이어 그의 아들인 손창근 씨에 그림을 물려줬다. 손 씨는 생전 학생들의 연구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며 서강대 박물관에 고서화 200점을 기증한 아버지 손세기의 뜻을 이어 받아 문화재 300점을 나라에 기증했다.​

▶어린이동아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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