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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뉴스] 사명대사가 일본 교토에서 남긴 글씨 5점 국내 공개
  • 장진희 기자
  • 2019-10-15 15: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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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명대사의 초상화.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강호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지 오래되지만/ 어지러운 세상에서 지낸 것이 벌써 10년이네/ 갈매기는 그 뜻을 잊지 않은 듯/ 기웃기웃 누각 앞으로 다가오는구나”

임진왜란 발발 13년 뒤인 1605년, 조선 중기의 승려였던 사명대사(1544∼1610)가 강화를 맺기 위해 일본에 갔을 때 남긴 한시다. 일본에서 임무를 잘 마무리한 뒤 속세를 정리하고 선승(참선하는 승려)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고려 말 문신인 유숙의 시 ‘벽란도’를 차운(다른 시의 운자를 따서 지음)하여 지은 시로 추정된다.

사명대사가 직접 쓴 글씨 5점이 400여 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임진왜란 후 강화 및 포로 협상을 위해 1604∼1605년 일본에 건너가 활약했던 사명대사가 일본 교토의 절 고쇼지에 남긴 유묵(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을 15일부터 11월 17일까지 서울 용산구 박물관 상설전시실에서 특별 공개한다고 최근 밝혔다. 사명대사의 글씨 5점과 고쇼지를 세운 일본 승려 엔니 료젠이 쓴 글씨 1점, 동국대박물관이 소장한 사명대사 초상화까지 총 7점을 선보인다.

이밖에 사명대사가 남긴 작품 중에는 신라의 문장가로 유명한 최치원의 시 중 일부인 ‘나팔 소리 들리고 아침저녁으로 물결 일렁이는데/ 청산의 그림자 속을 지나간 이 예나 지금 몇이나 될까’를 쓴 유묵이 있다. 또 그가 엔니 료젠에게 준 편지에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중생(생명을 가진 모든 생물)을 구하는 임무와 승려로서 수행하는 것이 모두 중요하다는 뜻이 담겼다.

19세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명대사의 초상화에는 ‘널리 세상을 구하는 스님’을 의미하는 ‘홍제존자(弘濟尊者)’라는 문구가 포함됐다.​

[한 뼘 더] 사명대사가 남긴 업적은?​

‘유정’이라는 법명(승려가 된 후에 부르는 이름)을 가진 사명대사는 불도만 닦는 평범한 승려가 아니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명대사는 승려들로 조직된 군대인 승병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가 왜군에 맞서 싸웠습니다. 사명대사와 승병은 평양성을 되찾는 데 큰 공을 세웠는데 당시 조선의 임금이었던 선조(조선 제14대 왕)도 그들을 크게 칭찬했다고 전해집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조선과 일본의 평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외교가로 활약하기도 했지요. 1604년 일본으로 가서 머무르며 일본의 장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담판을 짓고 포로로 잡혀있던 조선인 3000여 명을 구출해 돌아왔습니다.



사명대사가 일본에 갔을 때 남긴 한시

▶어린이동아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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