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뉴스
  •  ‘왕이 인정한 최고의 신하’ 조선시대 공신의 모습은?
  • 최유란 기자
  • 2019-06-16 14:46:51
  • 인쇄프린트
  • 글자 크기 키우기
  • 글자 크기 줄이기
  • 공유하기 공유하기
  • URL복사

조선시대 공신을 만나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부터 한글을 창제한 세종, 탕평책(정치세력의 균형을 꾀한 정책)을 펼친 영조와 정조까지. 조선시대 왕들의 위대한 업적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들이 왕위에 올라 업적을 쌓는 것이 과연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했을까?

국립고궁박물관은 최근 특별전 ‘조선의 공신’을 개막, 오는 30일까지 선보인다. 공신이란 나라와 왕실을 위해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 왕이 내리는 칭호. 즉 왕이 인정한 그 시대 최고의 신하를 의미한다. 최근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실을 찾아 조선시대 왕을 도와 나라의 안정에 힘을 보탰던 공신들을 만나봤다.

익안대군 영정.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왕이 되시옵소서”

조선시대에는 총 28번에 걸쳐 공신 임명이 이뤄졌다. 공신이 임명될 때마다 그 의미가 담긴 이름이 붙여졌는데, 조선 왕조를 세우는 데 공을 세운 ‘개국공신’을 시작으로 영조 때 ‘이인좌의 난’을 토벌한 ‘분무공신’이 마지막이다.

공신은 주로 개국(새로 나라를 세움)이나 왕의 즉위(임금의 자리에 오름), 반란 진압, 외교적 현안 해결 등에 큰 공을 세운 신하들을 대상으로 임명됐다. 즉 나라 전체를 뒤흔드는 중대한 사건에 왕을 도와 힘을 보탠 이들만이 공신이 될 수 있었던 것.

도난당한 지 약 18년 만인 지난해 되찾아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익안대군 영정’의 주인공 익안대군 이방의는 이 중 개국과 왕의 즉위 모두에 공을 세워 두 번이나 공신으로 임명된 인물이다. 태조의 셋째 아들인 그는 왕위 계승을 둘러싼 싸움에서 훗날 태종으로 왕위에 오르는 이방원을 도와 1398년 ‘정사공신’으로 임명됐으며 같은 해 ‘개국공신’으로도 뒤늦게 임명되는 영광을 누렸다.

오자치 초상.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감히 반란을? “역적을 처단하라”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 또 다른 공신 초상화 ‘오자치 초상’과 ‘이성윤 초상’의 주인공들은 각각 반란과 외세의 침공(다른 나라를 침범해 공격함) 속에서 왕을 지켜낸 공로로 공신에 임명됐다. 무신이었던 오자치는 세조 집권 정책에 반대한 이시애가 일으킨 반란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적개공신’으로 임명됐다.

이성윤은 조선 중기 일본이 조선을 침입한 임진왜란 때 광해군을 호위한 공으로 ‘위성공신’으로 임명됐다. 이후 광해군을 폐위(왕의 자리를 폐함)시키고 왕위에 오른 인조가 ‘위성공신’을 임명한 것을 취소하며 ‘이성윤 초상’ 또한 회수돼 불태워질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이성윤은 임진왜란 때 조종(임금의 조상)의 신주(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셨으며 광해군에게 반대해 남해로 유배를 가서 죽은 점 등을 고려해 충신으로 인정받아 그의 초상은 보존돼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성윤 초상.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공신이 되면 ‘온 가족’이 탄탄대로

국가적 중대한 사건에서 특별한 공을 세운 신하들인 만큼 공신으로 임명되면 막대한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공신의 등급에 따라 예우(예의를 갖춰 정중하게 대우함)가 달라졌는데 기본적으로 공신 교서(왕이 내리는 문서)와 녹권(공신의 훈공을 새긴 패), 초상화 등을 내렸으며 공을 기록한 비석을 세우기도 했다. 특히 초상화는 개인별로 2부를 제작해 1부는 당사자에게 전달하고 1부는 국가에서 보관했는데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 초상화 또한 이들이 공신에 임명되며 나라로부터 받은 공신 초상화이다.

공신으로 임명되는 것은 개인뿐 아니라 가문의 경사이기도 했다. 부모와 아내의 품계(벼슬의 계급)를 높여주고 자손들은 과거를 치르지 않아도 관직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 여기에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하는 것은 물론 죄를 짓더라도 용서하고 형을 면제해주는 등의 특별한 혜택도 주어졌다.

또한 공신이 되면 왕과 신하가 함께 소를 잡아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내고 피를 나눠 마시는 ‘공신회맹제’를 지내며 단결을 맹세하기도 했다. 특히 특별한 공이 있는 신하의 경우 신주를 왕의 신주와 함께 종묘에 모시기도 했는데 이는 신하들에게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어린이동아 최유란 기자 cyr@donga.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어린이동아에 있습니다.

< 저작권자 ⓒ 어린이동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권지단
  • 댓글쓰기
  • 로그인
    • 어동1
    • 어동2
    • 어동3
    • 어동4
    • 어솜1
    • 어솜2
    • 어솜3

※ 상업적인 댓글 및 도배성 댓글, 욕설이나 비방하는 댓글을 올릴 경우 임의 삭제 조치됩니다.

더보기

NIE 예시 답안
시사원정대
  • 단행본 배너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