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사설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쓴 ‘눈높이 사설’이 월, 수, 금 실립니다. 사설 속 배경지식을 익히고 핵심 내용을 문단별로 정리하다보면 논리력과 독해력이 키워집니다.

백낙삼 대표와 아내 최필순 씨. L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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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백낙삼 대표가 신신예식장에서 일하는 모습

[1]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오복(인생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 복)을 누리다가 생을 마감한 호상(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의 죽음)이니 웃음꽃을 피우며 경사스럽게 맞이하라’는 내용의 유언(죽음을 앞두고 남긴 말)을 남겼어요. 경남 마산에 위치한 신신예식장 *백낙삼 대표. 55년간 1만4000쌍에게 무료 결혼식을 선사한 그가 지난달 28일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요. 주변에선 ‘생활은 즐겁게, 임무는 성실하게, 인생은 보람되게’라는 그의 인생 철학대로 살다가 갔다고 해요.

[2] 말이 1만4000쌍이지 오랜 세월 그가 사회에 끼친 선한 영향력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져요. 그는 무료 예식장을 운영한 것에 대해 “나도 너무 가난해서 결혼식을 못 했다”고 했어요. 집안이 망해 대학 졸업도 못 하고 길거리 사진사로 연명(목숨을 겨우 이어 살아감)하던 그는 31세에 지금의 부인과 결혼했으나 식을 올리지 못했다고 해요. 뛰어난 사진 실력으로 재산을 모아 1967년 2층 건물을 매입(물건 등을 사들임)했지요. 여기에 신신예식장을 열고 사진 값만 받고 모든 것을 무료로 해줬어요. 2019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은 뒤로는 “정부가 나를 ㉠채찍질한다 싶어” 사진값도 안 받았다고.

[3] 무료라도 싸구려로 하지 않았어요. 그는 신부 드레스와 신랑 턱시도, 화장 등이 서울 예식장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라고 자부했어요. 그는 “신부가 화장하고 드레스 입고 나오면 신랑이 ‘내 신부 어디 갔냐’라고 한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예식에 정성을 쏟았어요. 한때는 하루 17건의 식을 치를 정도로 인기였지만 근래엔 무료 예식을 찾는 이가 확실히 줄었어요. 직원이 다 나가고 부인 최필순 씨와 함께 주례 사회 청소 들러리 하객까지 1인 다역(여러 가지 역할)을 맡아 왔지요. 지난해 뇌출혈로 쓰러진 뒤에는 아들 백남문 씨가 그의 역할을 대신했어요.

[4] 다른 사람의 결혼만 행복하게 출발시켜 준 것이 아니에요. 그 스스로 모범적인 결혼 생활을 했어요. 매년 부부의 날과 결혼기념일에는 꼭 부인에게 손편지를 써 우편으로 부쳤어요. 이들 부부의 얘기를 담은 책 ‘신신예식장’의 한승일 작가에 따르면 이들이 평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당신은 좀 쉬어요, 내가 할게요”였다고. 백 씨는 사후(죽고 난 이후) 묻힐 곳도 부부가 함께 심은 꽃나무 아래로 정하고 자연수목장으로 해 달라고 했어요.

[5] 그의 꿈은 100세까지 예식장을 운영한 뒤 결혼했던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 얼마나 잘 사는지 전국일주를 해보겠다는 것이었어요. 자신이 결혼시켜준 사람들의 행복을 두 눈으로 보고 싶었던 것일 텐데 아쉽게도 [㉮​]에 그쳤어요. 요즘 서울 강남의 호텔에서 결혼식을 하면 당일 예식 비용만 5000만 원이 훌쩍 넘어가요. 결혼 비용에 치이는 젊은이들이 결혼 자체를 포기하는 상황이지요. 백 씨가 반세기 넘게 해온, ‘생애 잊지 못할 날’을 선사하는 일은 이제 우리 모두의 숙제로 남았어요.

동아일보 5월 1일 자 서정보 논설위원 칼럼 정리

※오늘은 동아일보 오피니언 면에 실린 칼럼을 사설 대신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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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동아 전선규 기자 3q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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