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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예상 후보/산문]현충문을 나서면서
  • 어린이동아 취재팀
  • 1998-07-17 1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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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상 후보/산문]현충문을 나서면서

현충문을 나서면서 나는 생각했다. 오늘은 정말 뜻있는 하루를 보냈다고. 지난 해 현충일에는 엄마 아빠가 바쁘신 탓에 놀이동산에서 놀기만 했다. 그런데 그 날의 일기를 보신 선생님이 이 날은 노는 날이 아니라고 끝에 적어 놓으셔서 뜨끔했다. 또 한번쯤은 국립묘지에 가고 싶어서 오늘 국립현충원을 둘러본 것이다. 25년 전쯤 걸스카우트 대원이었다는 엄마의 기억에 따라 하나씩 순서대로 들러보기로 했다. 넓은 묘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과 내게 아름답고 깨끗하게만 느껴졌다. 여태까지는 6월 6일은 그저 조상이 주신 또 하나의 공휴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나보다 어린 동생은 “와, 여기서 롤러 블레이드 타면 끝내 주겠다!” 하고 말했다. “아, 불쌍한 중생.” 엄마가 이쪽 저쪽 묘지를 돌며 설명해 주었는데, 종착지는 이름 모를 전사자의 묘지였다. 연고자가 없는 묘지라는 것이다. 엄마는 중학교 때 이 곳에 와서 꽃을 꽂아 드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때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는데, 그 중 한 친구가 꽃을 꽂다가 그만 주저앉으며 “이 속의 아저씨가 ‘누구 엉덩이가 내 머리에 주저앉았어!’하시겠다.” 라고 말해 모두들 웃었다고 했다. 엄마는 가지고 간 꽃을 누군가의 묘에 꽂고는 중얼거렸다. “아저씨는 그대로겠지만 전 이렇게 늙었어요.” 엄마는 심각해 보였지만 우리는 킥킥 웃기만 했다. 그런 우리에게 아빠가 눈치를 주셨다. 걸어나오다가 현충일이 지났는데 혼자 묘지 앞에 서 계신 할머니를 보았다. 엄마는 이 다음에는 1년에 몇 번씩 이 곳에 오게 될지 모른다고 하셨다. 국가 유공자이신 외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이 곳에 묻힌다는 것이다. 아마 어딘가에 벌써 그 자리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우리를 끔찍히 위해 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묘지란 말을 듣자 나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현충문을 나서면서 여기 계신 조상들 덕분에 우리 나라가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주 이 곳에 오는 것은 좋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때문에 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정지영/서울 동북교 5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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