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뉴스
  • [Art&History] 훈민정음 반포 기념하는 한글날
  • 장진희 기자
  • 2019-10-06 15:17:06
  • 인쇄프린트
  • 글자 크기 키우기
  • 글자 크기 줄이기
  • 공유하기 공유하기
  • URL복사

[역사 속 그날] 역사 속 이번 주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기록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시작으로 근현대까지의 같은 날 있었던 사건들을 한 주 단위로 파악합니다. 이번 주는 10월 6∼12일 발생했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살펴보세요.


지난해 한글날을 앞두고 어린이들이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1945년 10월 9일,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가 한글날 확정해

1926년 11월 4일, 민족주의 국어학자들의 단체인 ‘조선어연구회(이후 한글학회)’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널리 퍼뜨려 모두 알게 함) 480주년을 맞이해 기념식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이날을 제1회 ‘가갸날’로 정했지요. 가갸날로 정한 것은 당시만 해도 한글이 널리 쓰이지 않아 ‘가갸거겨, 나냐너녀’하는 식으로 전해져 한글을 ‘가갸글’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세종실록’에 음력 9월 훈민정음이 반포됐다고 기록된 것에 근거해 음력 9월 29일인 이날 기념식이 개최된 것입니다.

1928년 가갸글 대신 ‘한글’이라는 이름을 붙인 뒤에는 매년 음력 9월 2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기 시작했지요. 이후 1932년부터는 9월 29일을 양력 날짜로 환산한 매년 10월 28일에 기념행사를 가졌습니다.

그러던 중 1940년 7월 훈민정음에 대한 한문 안내서인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됐고, 조선어학회는 책을 통해 1446년 음력 9월 29일이 아니라 9월 상순(1∼10일)에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상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을 한글날로 재확정하게 된 것이지요. 결국 1945년부터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계산한 10월 9일이 한글날로 지정됐습니다. 한글날은 2005년 국경일로 승격됐고, 2013년부터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로 지정됐지요.


[한 뼘 더] 주시경 선생의 업적은?

“우리나라의 말과 글을 강구하여 이것을 고치고 바로 잡아 장려하는 것이 오늘날 시급히 해야 할 일이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말인 한글을 갈고닦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주시경 선생(1876∼1914)이 남긴 말입니다. 주 선생은 한글을 연구하면서 국어 문법을 바로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1896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이자 한글로 된 ‘독립신문’ 발행에 기여했고 1908년에는 국어연구학회를 조직해 한글 연구의 기초를 마련했지요. 1914년에는 한글을 소리 내는 방법을 과학적으로 풀이한 ‘말의 소리’를 발행했습니다. 후학 양성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주 선생은 안타깝게도 병을 얻어 1914년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통령 직선제를 담은 제9차 헌법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돼 정부로 이송되고 있다


1987년 10월 12일, 국회 ‘대통령 직선제 헌법 개정안’ 의결

법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 되는 법인 헌법. 우리나라의 헌법은 언제 마지막으로 개정됐을까요? 1987년 10월 29일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중심으로 헌법이 개정된 후 오늘날까지 32년간 유지되고 있지요. 우리나라 헌법은 1948년 7월 17일 처음 만들어진 이후 총 9차례 개정됐습니다.

헌법은 국가의 통치 원리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이 되는 기본법인 만큼 국회의 의결 과정을 거치고 국민투표에 부쳐 개정하도록 명시하고 있지요. 우리나라 헌법이 꼭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정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일부 대통령들은 장기 집권을 위해 헌법을 입맛에 맞게 개정하기도 했어요.

1987년 6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호헌(헌법을 지킴) 조치에 맞서 국민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을 수 있게 하는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민주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습니다. 시위대의 열기가 식을 줄 모르자 전두환 정권은 헌법을 개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거둬들였습니다. 1987년 제9차 헌법 개정 헌법은 폭압적이고 권위적이었던 정치체제를 정리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한국의 OECD 가입 비준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되고 있다


1996년 10월 11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이사회, 한국 가입을 승인

1996년 우리나라는 ‘선진국 모임’이라 불리는 OECD의 29번째 회원국이 됐습니다. OECD는 세계 국가들이 사회 발전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경제 위기 등에 대응하기 위해 설치한 정책연구 및 협력기구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몰락한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1948년 유럽 국가들이 조직한 유럽경제협력기구(OEEC)에 1961년 미국, 캐나다가 가입하면서 지금의 OECD가 되었지요.

OECD에 가입한 한국은 경제정책·환경·노동·국제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회원국들과의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됐습니다. OECD 가입을 계기로 경제개혁 및 개방에 열을 올렸지만 1997년 금융위기를 마주하면서 급속하게 시장 개방을 추진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낳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린이동아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어린이동아에 있습니다.

< 저작권자 ⓒ 어린이동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권지단
  • 댓글쓰기
  • 로그인
    • 어동1
    • 어동2
    • 어동3
    • 어동4
    • 어솜1
    • 어솜2
    • 어솜3

※ 상업적인 댓글 및 도배성 댓글, 욕설이나 비방하는 댓글을 올릴 경우 임의 삭제 조치됩니다.

더보기

NIE 예시 답안
시사원정대
  • 단행본 배너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