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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History] ‘말과 마음’ 모아 만든 우리말 사전
  • 장진희 기자, 이지현 기자
  • 2019-09-08 14: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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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그날]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입니다. 기나긴 역사를 간직한 우리나라에선 과거에 어떤 중대한 사건들이 있었을까요? 매주 월요일 선보이는 ‘역사 속 그날’ 코너를 통해 역사 지식을 쑥쑥 키워보세요.


1947년 출판된 ‘조선어 큰사전’ 1권. 동아일보 자료사진


1945년 9월 8일, 일제에 압수됐던 조선말 큰사전 원고 발견

“앗, 바로 이거야.”

자신을 찾아와 국어사전 원고를 찾던 조선어학회(이후 한글학회) 사람들의 애타는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서울역 역장은 서둘러 조선어학회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원고지 2만6500여 장. 조선어학회가 일제강점기였던 1929년부터 편찬해 온 ‘조선말 큰사전’의 원고였지요. 일제의 조선어 말살(없애 버림) 정책에 맞서 한글을 보존하고자 조선어학회가 집필(직접 글을 씀)했던 조선말 큰사전의 원고는 1942년 일본 경찰에 압수되며 행방(간 곳이나 방향)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8일, 서울역 운송창고에서 원고가 발견됐고 드디어 조선어학회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지요. 그로부터 2년이 흐른 1947년 10월 9일, ‘조선말 큰사전’ 1권이 출간됐습니다. 10년 뒤인 1957년에는 총 16만4215어휘를 모은 우리나라 최초의 대사전인 ‘큰사전(총 6권)’이 발간됐습니다.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가 조직되어 작업에 들어간 지 28년 만에 거둔 성과였지요.

큰사전 집필을 위해 고등학교 국어 교사였던 이상춘은 자신이 정리한 약 7만개의 어휘 자료를 조선어학회에 기증했습니다. 그가 기증한 원고는 사전 편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지요. 조선어학회는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조선어사전’과 외국인 선교사였던 제임스 게일이 편찬한 ‘한영자전’ 등을 참고하기도 했습니다. 사투리는 방학 때 고향에 내려가는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수집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일제에 저항해 우리말을 연구하던 1942년 당시 조선어학회 회원들



[한 뼘 더] 국어사전 밑바탕 된 ‘말모이’

우리나라 최초의 대사전은 ‘큰사전’. 그렇다면 ‘말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편찬이 시도됐던 국어사전의 원고이지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국어학자인 주시경 선생과 지식인들은 통일되지 않은 한글 표기와 띄어쓰기 때문에 우리말 사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대중들을 위해 1911년 사전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주 선생이 세상을 떠나면서 말모이가 출판되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말모이는 조선어학회가 ‘큰사전’을 만드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상해 임시정부 백범 김구 선생 집무실 전경을 재현한 모습


1919년 9월 11일, 상해임정, 헌법 개정 공포 및 대통령제 채택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에 조직적으로 항거(맞서서 반항함)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됩니다.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임시정부의 입법기관)을 구성하고 각 도를 대표하는 의원 30명이 모여서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지요. 각료(한 나라의 내각을 구성하는 각 장관)에는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 국무총리 이승만, 내무총장 안창호, 외무총장 김규식, 법무총장 이시영, 재무총장 최재형, 군무총장 이동휘, 교통총장 문창범 등이 임명되었습니다.

같은 해 9월 11일에는 임시헌법을 제정해 공포하고 대통령제를 채택해 이승만을 임시대통령으로 선출했지요. 이승만 전 대통령은 4·19혁명으로 사임하기 전까지 대한민국의 제1, 2, 3대 대통령을 지냈습니다.​


유신 헌법 폐지를 외치는 대학생들


1978년 9월 13일, 서울대생 2000여 명, 유신 철폐 요구 시위​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7월 남북의 평화 통일을 약속한 7·4 공동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공동 성명 발표 3달 뒤, 박 전 대통령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헌법과 강력해진 대통령이 필요하다”며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유신 헌법을 제정합니다. 1972년 12월 박 전 대통령이 4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유신 체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요. 국민들은 7·4 공동 성명으로 통일 대한민국의 꿈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으나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오히려 북한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도 짓밟았습니다. 이에 분노한 대학생들은 전국 곳곳에서 유신 철폐를 요구하는 시위를 끊임없이 벌였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 전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이로써 18년간의 그의 집권도 막을 내리게 되었지요.​

▶어린이동아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이지현 기자 easy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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