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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높이 사설] [눈높이 사설]대장경, 강화에서 안 팠다고?
  • 어린이동아 취재팀
  • 2013-08-27 1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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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 사설]대장경, 강화에서 안 팠다고?

경남 합천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이 있다. 팔만대장경은 고려 때 몽고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에 있던 무신 정권(군사 일을 맡아보던 관리들이 정치권력을 잡은 특수한 정권)이 부처의 힘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기 위해 강화도 선원사에 대장도감을 설치해 만든 것이라고 교과서에 나온다.

그러나 대장도감은 인천 강화도가 아니라 경남 남해에 있었다는 증거가 새로 제시됐다. 대장도감이란 고려시대에 대장경(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총서)의 활자판에 글자를 새기는 업무를 담당한 관청을 말한다.

기존의 강화에서 제작됐다는 설은 ‘조선 태조가 강화 선원사에서 옮겨온 대장경을 보러 용산강에 행차했다’는 태조실록의 기록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선원사는 1245년에 세워졌고 이때는 대장경 판각(나뭇조각에 글씨를 새김)이 90% 이상 완료된 시점이라 강화 제작설은 의심을 받았다.

이후 강화 선원사에 대장도감을, 남해에 분사(分司·일정한 인원이나 기능을 분리하여 따로 둔 분관청) 대장도감을 설치했을 것이라는 새로운 추측이 나왔다.

그러나 불교학자인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2010년 “대장도감 판본과 분사 대장도감 판본을 조사해 본 결과 두 판본이 만들어진 곳은 동일한 장소였고 그것이 남해였다”고 주장했다.

박 원장은 27일 남해군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판본 전체를 일일이 조사한 종합 결과를 제시했다. 대장경 각 권의 끝에는 간행 기록이 나와 있다. 간행 기록에 분사 대장도감이라고 된 것은 모두 500권이다. 이 중 473권의 목판이 ‘대장도감’이라고 된 네 글자를 파내고 새로 ‘분사 대장도감’이란 여섯 글자를 다시 새겨 끼워 넣었다. 대장도감과 분사 대장도감은 같은 장소였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선원사는 대장경이 남해에서 제작된 뒤 강화성 서문 밖 판당에 옮겼다가 조선 초 해인사로 다시 옮길 때 거쳤던 경유지일 가능성이 높다.

팔만대장경은 경주, 서울 종묘와 함께 1995년 우리 문화유산으로는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 이런 귀중한 유산에 대해 역사학계가 그동안 기초적인 사실 조사마저도 허술하게 해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동아일보 8월 27일자 송평인 논설위원 칼럼

정리=정민아 기자 m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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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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