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사설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쓴 ‘눈높이 사설’이 월, 수, 금 실립니다. 사설 속 배경지식을 익히고 핵심 내용을 문단별로 정리하다보면 논리력과 독해력이 키워집니다.
서울의 한 유치원에서 어린이들이 서울시 마스코트인 ‘해치’ 캐릭터를 만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1] 보통 5세부터 다니는 영어유치원에 입학하려면 ‘4세 고시’라 불리는 레벨 테스트(실력을 알아보는 시험)를 봐야 해요. 그런데 이 시험은 실력이 있다고 모두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자녀를 영어유치원에 입학시키려는 부모님이 많다 보니, 영어유치원들은 대개 선착순(먼저 오는 순)으로 원비를 받아서 레벨 테스트를 볼 어린이를 정하는데 3초 안에 입금이 마감되기도 하지요. 한 영어유치원에서는 1000명이 넘는 어린이가 레벨 테스트를 치렀는데, 응시료 수입만으로도 서울 강남의 월세(집이나 방을 매월 빌려 쓰기 위해 내는 돈)를 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어요.
[2] 조기(이른 시기) 영어 교육 열풍(매우 세차게 일어나는 기운)을 타고 전국 영어유치원은 지난해 843곳으로, 일반 유치원(8441곳)의 10% 수준까지 불어났어요. 이는 2019년(617곳)에 비해 37%나 늘어난 것. 저출산(아이를 적게 낳는 현상)의 영향으로 일반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급격하게 줄어든 것과는 달리 영어유치원은 큰 인기를 누리고 있어요. 반면 지난해 어린이집은 2만8954곳으로, 4년간 23%나 주는 등 줄줄이 문을 닫았어요.
[3] 영어유치원은 일반 유치원과 똑같이 3월에 새 학기를 시작하고 유치원이라는 이름을 강조하지만, 사실 영어학원이에요. 영어유치원은 ‘학원법’이라는 법의 적용을 받아 교습비(가르치는 대가로 받는 돈) 상한선(더 이상 올릴 수 없는 선)이 없어서 학원이 그 비용을 정하기 나름이에요. 전국 평균 월 교습비는 141만6000원인데, 서울만 보면 200만 원에 가까워요. 요즘 영유아 공교육(유치원)과 공보육(어린이집)은 정부가 지원해주는 돈이 늘어 거의 무상(돈을 내지 않음)이에요. 그런데도 비싼 영어유치원이 필수 코스가 되어 버린 건 공교육(국가가 하는 교육)이 충족시킬 수 없는 수요(상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에요. 경험을 통해 ‘외국어는 일찍 배울수록 좋다’는 법칙을 믿고 있는 부모님들은 아이가 어린 나이에 영어에 노출되기를 바라요.
[4] ‘영유’(영어유치원)냐, ‘일유’(일반 유치원)냐. 아이를 첫 교육기관에 보내는 부모님들은 *공교육과 사교육(나라가 관리하는 기관 밖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을 선택해야 할 갈림길에 서게 돼요. 일반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놀이 위주로 학습하고 뛰어노는 시간도 보장돼요. 그 나이에 꼭 배워야 할 생활 습관이나 사회성도 가르치지요. 이와 달리 영어유치원은 교육 과정이 영어 학습에 치우쳐 있어 아이가 균형 있게 발달하는 것을 해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많아요. 영어유치원의 하루 평균 공부 시간은 4시간 57분으로, 중학교 수업 시간과 비슷한 정도예요.
[5] 영어유치원에 입학하면 공교육 이탈(떨어져 나옴)이 시작된다고 봐야 해요. 소수(얼마 되지 않는 수)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교육을 기대하고 사립초나 국제학교 진학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요. 자녀 수가 줄어들수록 다양한 교육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기 마련인데, 틀에 갇힌(자유롭지 못하고 형식에 사로잡힌) 공교육이 이런 요구에 응하지 못하고 이들을 사교육으로 자꾸 밀어내요. 외동(다른 자식 없이 단 하나뿐인 자식) 자녀를 최고로 키우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공교육의 무기력(힘이 없음), 학원의 상술(장사하는 꾀)이 뒤섞이며 영유아 사교육 비용이 크게 늘었어요. 평등한 출발선이어야 할 영유아 교육도 사교육이 야금야금 자리를 차지해가고 있어요.
동아일보 8월 13일 자 우경임 논설위원 칼럼 정리
※오늘은 동아일보 오피니언 면에 실린 칼럼을 사설 대신 싣습니다.
▶어린이동아 김재성 기자 kimjs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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