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초상화. CNN 홈페이지 캡처 

청각장애를 딛고 피아노 소나타 ‘월광’, 교향곡 ‘운명’ 등 수많은 명곡을 남긴 독일의 위대한 음악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 베토벤의 청각장애가 납중독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와 화제였어요. 과학자들은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분석해 청각장애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물질을 발견하면서 이런 결론을 내렸지요. 약 200년 전 숨을 거둔 베토벤에 대한 연구가 현재에도 이뤄질 수 있었던 그의 머리카락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보아요.

‘머리카락’으로 그를 기억해

1810년경 베토벤의 지휘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

베토벤의 머리카락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 과거 유럽의 관습 덕분이에요. 당시 유럽에선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라 간직하는 문화가 있었거든요.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다음날 그의 친척과 지인들 역시 그의 집에 방문해 머리카락을 잘라 보관했다고 해요. 그래서 베토벤의 머리카락이라고 후대에 전해진 샘플은 여덟 묶음이나 있었지요.

우선 과학자들은 베토벤에 대한 연구에 앞서 남겨진 머리카락 샘플이 정말 베토벤 것이 맞는지부터 확인했어요. 영국 BBC 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독일 튀빙겐대 고고학과 등 국제 연구진은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보관하던 사람들과 박물관, 대학교 등으로부터 기증받은 샘플들을 현대 베토벤 가문 사람들의 유전 정보를 토대로 분석했어요. 그 결과, 유전자(DNA)가 일치하며 남성의 성염색체(암수 성을 결정하는 데 관여하는 염색체)를 가지고 있는 다섯 묶음을 추려냈지요.

이렇게 밝혀진 베토벤의 머리카락은 그의 생애와 사망 원인에 대해 밝히는 여러 연구에 활용됐어요. 사람의 머리카락에는 DNA가 담겨 있어 이를 분석하면 병력(앓았던 병의 종류) 등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어요. 최근에는 기술의 발달로 아주 적은 양의 모발로도 이런 연구가 가능하지요.

물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DNA를 해석하는 건 까다로운 일이에요. DNA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작은 조각으로 분해되기 때문. 이에 과학자들은 그의 머리카락 샘플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것을 골라 DNA를 추출한 것으로 알려져요.

베토벤의 죽음 “간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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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에 활용된 베토벤의 머리카락

베토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도 그의 머리카락을 통해 밝혀졌어요. 지난해 영국 케임브리지대 및 독일 막스프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 등 국제 연구진은 그의 머리카락으로 사망 원인을 분석해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어요.

미국 CNN 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연구진은 베토벤이 목숨을 잃기 몇 달 전, 간에 염증을 유발하는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됐었다고 밝혔어요. 그간 베토벤의 건강과 사망 원인을 둘러싸고 많은 추측들이 오갔어요. 베토벤은 자신이 숨지기 25년 전인 1802년 주치의에게 자신의 병을 기록하고 이를 공개하라고 요청했으나 이에 대해 자세히 밝혀지지 않아 지금까지 논쟁이 이어졌지요.

연구진은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통해 그가 간 질환 위험 유전 요소를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건강이 크게 악화됐을 것이라고 봤어요. 베토벤은 사망 전 눈과 피부 등이 노래졌으며 팔다리가 부풀어 올랐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모두 간이 손상됐을 때 나타나는 증상.

연구에 참여한 영국 케임브리지대 고고학과 트리스탄 베그 박사는 “베토벤이 와인을 즐겨 마셨다는 기록 등을 종합하면, 유전적으로 간 질환에 걸리기 쉽고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데다 알코올을 너무 많이 섭취해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앞으로 연구를 통해 각 요인이 그의 죽음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어요.

▶어린이동아 전선규 기자 3q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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