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부담없이 찾는 ‘라면’, 생활비 아끼려고 소비 급증
세계적인 물가 상승으로 생활비를 아끼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지난해 세계 50여 개국에서 끓여먹은 라면 소비량도 역대 최고 수준으로 늘었어요.
라면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친근한 음식으로 여겨져요. 경제성장을 이루기 전, 우리나라가 가난하던 시절에 라면은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고마운 음식이었지요. 이 밖에도 가난과 배고픔을 상징하는 음식은 또 무엇이 있을까요?
고급 식재료로 거듭난 ‘가난의 상징’
18세기 미국에선 랍스터가 가난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Aol닷컴 홈페이지 캡처
랍스터 요리가 발달하지 않은 미국에선 랍스터가 처치곤란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USA 투데이 홈페이지 캡처
귀하디귀한 고급 식재료 랍스터(바닷가재)가 과거에는 볼품없는 대접을 받았다는 사실, 믿어지나요? 18세기만 하더라도 미국 북동부 지역에선 랍스터가 너무 많이 잡혀 골칫거리였어요. 당시 랍스터는 주로 감옥의 죄수들이나 농장에서 일하는 일꾼들의 식량으로 여겨졌어요. 먹고도 남은 처치 곤란 랍스터는 낚시의 미끼나 밭에 뿌리는 비료로 사용됐다고도 전해져요.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민들이 몰려가던 시기, 이주민의 대부분은 농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어요. 농장 주인은 일꾼들에게 빵보다 저렴하고 흔한 랍스터를 먹으라고 권하곤 했지요. 한동안 식사로 랍스터를 먹다 화가 난 일꾼들은 파업(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한꺼번에 작업을 중지함)을 하기도 했어요. 이후 작성한 노동 계약서에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식사로 랍스터를 내놓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기도 했지요.
랍스터가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았던 이유는 놀랍게도 맛이 없었기 때문! 당시 미국에선 랍스터 요리가 발달하지 않아 대부분 맹물에 삶아 먹곤 했어요. 랍스터를 물에 삶으면 맛을 내는 성분이 몽땅 빠져나가, 마치 흙을 씹어 먹는 느낌이 난다고 해요. 반면 같은 시기 튀기거나 쪄 먹는 등 랍스터 음식이 발달한 유럽에선 랍스터가 이미 일품요리 대접을 받았지요.
이후 랍스터는 19세기를 지나며 미국에서도 점차 귀한 식재료로 떠올라요. 미국의 교통이 발달하면서 랍스터가 미국 전역으로 퍼져 인기를 얻기 시작했지요. 랍스터가 많이 잡히는 지역 중 하나인 미국 북동부의 메인 주에선 해마다 랍스터 축제를 열어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어요.
소화되는 게 무섭던 시절, ‘보릿고개’
우리나라에선 보리가 ‘가난의 대명사’로 통한다. 뉴푸드 홈페이지 캡처
보리밥, 보리빵, 보리 과자, 보리차…. 요즘은 보리나 현미, 귀리 같은 잡곡들이 건강에 좋은 ‘슈퍼 푸드’로 알려지면서 쌀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하지요.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 보리는 예로부터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을 상징하는 ‘빈곤의 대명사’였답니다.
봄에 씨를 싹 틔워 성장시킨 뒤 여름에 모를 심고 가을에 거두어야 하는 벼와 달리, 겨울에 씨를 뿌려 여름 즈음에 바로 추수할 수 있는 보리는 쌀이 바닥날 무렵 주식(끼니때마다 주로 먹는 음식)으로 삼던 곡물이었어요.
보리는 쌀보다 수분을 훨씬 적게 머금는 탓에 밥을 지어도 식감이 거칠고 퍽퍽한 게 특징. 쌀에 비해 소화도 잘되지 않아 오죽하면 ‘양반은 트림하고, 상놈은 방귀 뀐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 양반과 비교해 늘 보리밥만 먹는 사람들의 설움이 담긴 말이지요.
그러나 이런 보리조차 부족해 배를 곯아야 하는 안타까운 시절도 있었어요. 이를 ‘보릿고개’라고 불러요. 묵은 곡식은 떨어졌는데 햇보리는 아직 다 익지 않아 먹을 게 없는 가장 어려운 때를 가리켜요.
그렇다고 보리가 하찮기만 한 음식은 아니에요. 모두가 어렵던 시절을 견디게 해준 고마운 존재로 우리 문학에도 자주 등장하곤 해요. 게다가 요즘은 건강을 위해 일부러 쌀이 아닌 보리를 찾는 사람도 많으니, 이만하면 보리도 출세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어린이동아 전선규 기자 3q21@donga.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어린이동아에 있습니다.
< 저작권자 ⓒ 어린이동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상업적인 댓글 및 도배성 댓글, 욕설이나 비방하는 댓글을 올릴 경우 임의 삭제 조치됩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