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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높이 사설] 올해의 단어 ‘고블린 모드’
  • 장진희 기자
  • 2022-12-11 14: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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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사설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쓴 ‘눈높이 사설’이 월, 수, 금 실립니다. 사설 속 배경지식을 익히고 핵심 내용을 문단별로 정리하다보면 논리력과 독해력이 키워집니다.



의도적으로 방종을 선택한 ‘고블린 모드’에 빠진 사람들. CNN 홈페이지 캡처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고블린 모드’가 선정됐다고 알리고 있다. 옥스퍼드 랭귀지 홈페이지 캡처

[1] 고블린(Goblin)은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 애니메이션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다. 주로 덩치가 작고 사악하거나 탐욕스러운 요괴로 그려진다. 영화 스파이더맨에선 강력한 괴물로 등장했지만…. 도깨비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느낌은 다르다. 도깨비는 훨씬 종류가 다양하고, 또 친근하다. 수호자(지키고 보호해 주는 사람) 의미도 있다. 고블린은 ‘추함’을 연상시킨다. 고블린과 생활 방식을 뜻하는 모드(Mode)의 합성어 ‘고블린 모드’가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올해의 단어로 선정됐다.

[2] 고블린 모드란 말 자체는 국내에서는 낯설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미 고블린 모드의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만약 내가, 혹은 자녀가 일주일 내내 같은 잠옷을 입고 거의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감자칩을 먹으며 휴대전화로 넷플릭스만 보고 있다면, 침대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입던 잠옷 차림에 양말만 신고 집 앞 편의점에 콜라를 사러 간다면….

[3]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고블린 모드에 대해 “사회적 규범(가치 판단의 기준)이나 기대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변명의 여지없이 방종(제멋대로 행동해 거리낌이 없음)하거나 게으르거나 탐욕스러운 행동 유형”을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집이 지저분하든, *정크푸드 박스 더미가 곳곳에 쌓여 있든 “뭐 어때서?”라는 마음가짐이다. 고블린은 남들 눈에 신경 쓸 이유가 없으니까. 타락의 안락함, 그 자체인 것이다.

[4] 고블린 모드는 올해 처음으로 실시된 대중 투표에서 93%, 31만여 표를 얻어 ‘메타버스’와 ‘#IStandWith(∼을 지지한다는 뜻. 우크라이나 전쟁 계기로 급증)’를 제치고 1위로 선정됐다. 2022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3년 차에 접어들며 ‘지친’ 개인들의 심리적 상태를 정확히 포착했다는 평가다. 팬데믹 초기 유기농 아침 식사를 하고 근사한 몸매를 만드는 등의 모습을 너도나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러나 점점 달성할 수 없는 미적 기준, 지속 불가능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반항(맞서 대들거나 반대함) 심리가 일고 있다는 것이다.

[5] ‘단순 방종’이 아닌 사회적 규범과 기대를 거부하는 ‘의도된 방종’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각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격변(갑자기 심하게 변함)에 대한 환멸(괴로운 마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혹시 있을지 모를 제3차 세계대전 위기감까지 겹쳐 극단적 자아(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 관념) 중심주의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6] 고블린 모드는 그런 점에서 세계사적 전환기를 맞아 눈여겨봐야 할 중요한 시대적 현상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자기개발 행위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실제 모습과 SNS를 통해 과시하는 삶이 다르다면 이중생활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고블린 모드의 삶이 장난스러움을 넘어 사회적 무력감(스스로 힘이 없음을 알았을 때 허탈한 느낌)으로 이어져선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아일보 12월 7일 자 정용관 논설위원 칼럼 정리

※오늘은 동아일보 오피니언 면에 실린 칼럼을 사설 대신 싣습니다.​




▶어린이동아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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