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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뉴스] 1500년 전 가야 귀족 무덤에서 금은 장신구 우르르
  • 장진희 기자
  • 2020-10-29 13: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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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63호분에서 나온 장신구. 문화재청 제공


1500년 전 비화가야 최고지배층의 무덤에서 화려한 장신구가 무더기로 발굴됐다. 비화가야는 562년까지 존속(계속됨)했던 가야연맹의 한 세력으로 경남 창녕을 거점으로 삼았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경남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 63호분에서 금동관, 은반지, 은허리띠, 유리구슬 목걸이 같은 지배계층의 장신구가 무덤주인의 몸에 둘러졌던 그대로 발견됐다고 최근 밝혔다.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63호분은 도굴(허락받지 않고 고분을 파냄) 피해를 입지 않아 주목된다. 비화가야의 고분은 일제강점기 당시 약탈과 도굴의 표적이었기에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드물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14년부터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하다 지난해 11월 39호분 봉토에 가려졌던 63호분의 매장주체부(시신을 안치하는 곳)를 열었다. 이후 본격적인 조사를 통해 매장 당시 무덤 주인을 장식했던 장신구를 확인했다.

머리 부분에서 발견된 높이 약 21.5㎝의 금동관은 맨 아래에 너비 약 3㎝의 관테(관을 쓸 수 있게 만든 띠)가 있고 그 위에 3단의 나뭇가지 모양 장식 3개가 있다. 관테 아래에는 곱은옥(옥구슬)과 금동구슬 장식이 있다.

전체 너비 45㎝의 은허리띠에서는 은으로 장식한 작은 칼 2개가 확인됐다. 오른손과 왼손에서 각각 1개와 3개의 은반지가 나왔다. 오른 팔뚝에서는 팔찌로 추정되는 장신구가 나오기도 했다.

연구소 측은 “부장품을 더 조사해봐야겠지만 남자 무덤의 특징인 대도(큰 칼)가 나오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여성의 무덤으로 보인다”면서 “키는 155㎝ 정도였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무덤 주인의 머리 위쪽에는 토기 및 철제 유물을 묻은 부장공간이 있고 발 아래쪽에는 순장자가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이 있었다. 순장은 왕이나 귀족이 죽었을 때 신하나 종을 함께 묻었던 풍습이다. 순장 공간에는 두 명이 안치된 것으로 보인다.


여성 귀족의 것으로 추정되는 금귀걸이


[한 뼘 더] 신분 사회의 그림자, 순장

가야를 비롯한 삼국시대의 고분에서는 순장의 흔적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삼국시대 사람들은 죽음과 삶이 연결돼 있다고 믿었어요. 죽은 이후에도 삶이 이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왕이나 귀족은 죽고 나서도 권세(권력과 세력)를 누리길 바랐어요. 현실에서 자신을 보필하던 신하나 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아랫사람을 순장해 무덤에 묻은 것이지요. 산 사람을 무덤에 묻는 풍습은 현대의 시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당시에는 임금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기 위해 기꺼이 순장되는 신하도 있었다고 하네요.​

▶어린이동아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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