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꾼 어깨부터 생각하라는 어머니 당부 되새기겠습니다”
“‘가마를 타면 가마꾼의 어깨를 먼저 생각하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당부를 가슴에 되새기겠습니다.”
지난달 29일 제40대 국무총리 취임식을 가진 정운찬 총리(63)는 취임인사를 이렇게 끝맺었다. 정 총리는 이날 총리로서의 첫 업무를 시작했다. 이어 국회 본회의에 참석한 정 총리는 “선우후락(先憂後樂·남보다 먼저 근심하고 남보다 나중에 즐긴다는 뜻)의 자세로 어둡고 그늘진 곳부터 먼저 챙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서울대를 이끌던 수장이 나라살림을 도맡게 됐다.
● 내 사랑 야구
정 총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야구 마니아’다. 그가 서울대 총장 시절 임기를 마친 후 계획을 물으면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총장 자리에서 물러나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던 지난해 3월 두산 베어스-히어로즈전 야구해설가로 깜짝 변신했다. 정 총리는 ‘두산’ 팬이다.
“야구는 10 대 0으로 지다가도 9회말 투아웃,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에서 이길 수도 있지요. 미래를 예측하기가 힘든 스포츠입니다. 지다가도 이길 수 있다는 의미에서 패자부활전을 연상시켜 좋습니다.”
1970년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정 총리는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교수 시절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와 메츠 경기를 200경기나 봤다고. 그의 야구 사랑 때문에 박사 학위 취득이 1년 늦어진 것은 유명한 일화다.
● 어른스럽던 ‘짱구박사’
‘한국의 대표 지성인’으로 꼽히는 정 총리의 초등학교 시절은 어땠을까.
“사람들은 제가 은 스푼을 입에 물고 태어났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지만 저는 명절과 제삿날, 생일날을 빼놓고는 밥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먹을 밥이 없는 점심시간은 아주 괴로웠는데 학생들 몰래 뒷산에서 놀다 와야 했기 때문에 비 오는 날이 가장 힘들었죠.”
그의 통지표에는 ‘성적은 우수하나 성인(成人)다운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쓰여 있다. 개구쟁이보다는 어른스러운 모범생에 가까웠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에 흥미를 느꼈던 그의 초등학교 때 별명은 ‘짱구박사’다.
● 정 총리를 만든 어머니와 네 명의 아버지
초등 3학년 때 아버지를 잃은 정 총리를 어머니가 당시 수도여자의대(현 고려대 의대) 병원에서 침대 시트 등 빨랫감을 받아와 세탁 일을 하면서 뒷바라지했다. 어머니는 말의 품격을 가르치기 위해 자식인 정 총리에게도 ‘자네’라는 호칭을 썼다.
“아버지는 늘 저에게 ‘밥상에서 손에 닿지 않는 음식은 먹지 마라’와 ‘세 번 이상 초대하지 않으면 잔칫집에 가지 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뜻으로 새기고 있고 저의 자식들에게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 총리는 자신에게는 네 명의 아버지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생부와 자신을 길러준 양부, 경기중학교 등록금을 지원해준 서울대 초빙교수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 그리고 스승인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 특히 정 총리가 대학 2학년 시절 처음 만난 조 명예교수는 정 총리의 지적 호기심에 소나기 같은 역할을 했다. 대학 졸업 후 조 교수의 조언을 듣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정 총리의 처가에서 그의 결혼을 반대하자 조 교수가 직접 그의 장인과 장모를 설득해 결혼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이지현 기자 edith@donga.com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지난달 29일 제40대 국무총리 취임식을 가진 정운찬 총리(63)는 취임인사를 이렇게 끝맺었다. 정 총리는 이날 총리로서의 첫 업무를 시작했다. 이어 국회 본회의에 참석한 정 총리는 “선우후락(先憂後樂·남보다 먼저 근심하고 남보다 나중에 즐긴다는 뜻)의 자세로 어둡고 그늘진 곳부터 먼저 챙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서울대를 이끌던 수장이 나라살림을 도맡게 됐다.
● 내 사랑 야구
정 총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야구 마니아’다. 그가 서울대 총장 시절 임기를 마친 후 계획을 물으면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총장 자리에서 물러나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던 지난해 3월 두산 베어스-히어로즈전 야구해설가로 깜짝 변신했다. 정 총리는 ‘두산’ 팬이다.
“야구는 10 대 0으로 지다가도 9회말 투아웃,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에서 이길 수도 있지요. 미래를 예측하기가 힘든 스포츠입니다. 지다가도 이길 수 있다는 의미에서 패자부활전을 연상시켜 좋습니다.”
1970년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정 총리는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교수 시절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와 메츠 경기를 200경기나 봤다고. 그의 야구 사랑 때문에 박사 학위 취득이 1년 늦어진 것은 유명한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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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 지성인’으로 꼽히는 정 총리의 초등학교 시절은 어땠을까.
“사람들은 제가 은 스푼을 입에 물고 태어났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지만 저는 명절과 제삿날, 생일날을 빼놓고는 밥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먹을 밥이 없는 점심시간은 아주 괴로웠는데 학생들 몰래 뒷산에서 놀다 와야 했기 때문에 비 오는 날이 가장 힘들었죠.”
그의 통지표에는 ‘성적은 우수하나 성인(成人)다운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쓰여 있다. 개구쟁이보다는 어른스러운 모범생에 가까웠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에 흥미를 느꼈던 그의 초등학교 때 별명은 ‘짱구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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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정 총리가 경기고 2학년 때 서울대 의대 외국인교수 숙소에서 찍은 사진. 앞줄 가운데가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 뒷줄 왼쪽에서 첫 번째가 정 총리다.(왼쪽) 동아일보 자료 사진. 취임 첫날인 29일 정 총리는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자신을 키운 ‘네 명의 아버지 중 한 명’이라고 지칭한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의 묘지를 참배했다. 연합뉴스 |
● 정 총리를 만든 어머니와 네 명의 아버지
초등 3학년 때 아버지를 잃은 정 총리를 어머니가 당시 수도여자의대(현 고려대 의대) 병원에서 침대 시트 등 빨랫감을 받아와 세탁 일을 하면서 뒷바라지했다. 어머니는 말의 품격을 가르치기 위해 자식인 정 총리에게도 ‘자네’라는 호칭을 썼다.
“아버지는 늘 저에게 ‘밥상에서 손에 닿지 않는 음식은 먹지 마라’와 ‘세 번 이상 초대하지 않으면 잔칫집에 가지 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뜻으로 새기고 있고 저의 자식들에게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 총리는 자신에게는 네 명의 아버지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생부와 자신을 길러준 양부, 경기중학교 등록금을 지원해준 서울대 초빙교수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 그리고 스승인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 특히 정 총리가 대학 2학년 시절 처음 만난 조 명예교수는 정 총리의 지적 호기심에 소나기 같은 역할을 했다. 대학 졸업 후 조 교수의 조언을 듣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정 총리의 처가에서 그의 결혼을 반대하자 조 교수가 직접 그의 장인과 장모를 설득해 결혼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이지현 기자 edith@donga.com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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