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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식 사회적 거리두기는?… 전염병에 맞선 선조의 지혜
  • 장진희 기자
  • 2020-05-20 1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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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병에 맞서다’… 국립중앙박물관 테마전


허준이 쓴 온역 지침서 ‘신찬벽온방’의 일부.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환자를 상대하여 앉거나 설 때 반드시 등지도록 한다.’

조선시대에도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이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지침이 있었다. 조선의 명의(병을 잘 고쳐 이름난 의사) 허준(1539∼1615)이 온역에 대응하는 응급의학 서적인 ‘신찬벽온방(보물 제1087호)’을 1613년에 발표했다. 광해군(조선 제15대 왕) 때인 1612년부터 티푸스성 전염병인 온역이 크게 유행하자 허준이 백성에 보급하기 위해 급히 지침서를 만든 것.

코로나19가 또 다시 대유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스크 착용, 손 씻기 등의 위생수칙을 준수하는 것이 강조된다. 전염병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조선시대 때 조상들은 병을 막기 위해 어떤 방법을 동원했을까? 국립중앙박물관(서울 용산구) 상설전시실 1층에서 다음달 21일까지 선보이는 테마전 ‘조선, 역병에 맞서다’를 최근 찾아 전염병에 현명하게 맞서고자 했던 선조들의 의지를 엿봤다.​ 


정조 때 발간된 표준의서 ‘제중신편’​


전염병 창궐, 엄중히 다스려라!

감염병이 유행할 때 조정(임금이 나라의 정치를 집행하는 기구)은 어떤 노력을 펼쳤을까. 허준은 광해군의 명으로 1612∼1623년 조선 전역을 휩쓴 온역에 대응하는 신찬벽온방을 발표해 전염병 확산을 막고자 했다. ‘병에 걸린 사람의 옷을 깨끗하게 세탁한 후 밥 시루에 넣어 찌면 전염되지 않을 수 있다’는 등의 대책이 책에 나와 있다. 정부가 자가격리 대상자의 옷, 침구 등을 분리해 온수로 세탁하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지적이다. 이 책에서 허준은 “전염병은 청결하지 못한 환경과 청렴하지 않은 정치 때문에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조선 정조(조선 제22대 왕) 때인 1786년에는 궁궐까지 홍역이 돌았다. 신분의 높낮이와 관계없이 전염병이 덮쳤다. 그해 여름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가 홍역에 걸려 숨졌다는 기록이 남은 ‘문효세자예장도감의궤’가 공개됐다.

정조는 어의(궁궐에서 임금의 병을 치료하던 의원) 강명길(1737∼1801)에 명해 표준의서인 ‘제중신편’을 1799년 쓰도록 했다. 허준의 ‘동의보감’이 발표된 이후 발전된 의학 이론과 임상경험(병상에 임한 경험)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백성들의 삶에 실질적 도움을 주고자 했다.​


천연두 흉터가 얼굴 곳곳에 남은 조선 관리 김상옥의 초상화​


고위 관리도 피하지 못한 천연두

검버섯일까, 아니면 주근깨? 얼굴 전체를 덮은 얼룩의 정체는?

영조(조선 제21대 왕) 50년인 1774년 현직 관리를 대상으로 실시한 일종의 승진시험인 ‘등준시무과’ 합격자 18명의 초상화첩 ‘등준시무과도상첩’에서 눈여겨 볼 점이 있다. 이들 중 3명의 얼굴에서 ‘얽은 자국’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 내내 유행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전염병 ‘천연두’가 남긴 흔적이다. 천연두에 걸리면 피부 깊숙이 고름이 들어차는 발진이 돋아났다. 사망률이 매우 높았던 이 병에 걸렸다 살아남는다고 해도 피부 표면에 흉터가 남았다.


조선 고위 관리들의 초상화에 천연두로 인한 얽은 자국이 남아있는 모습


조선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도 어릴 적 천연두와 홍역을 모두 앓았다. 천연두 흉터가 한 쪽 눈썹을 갈라놓아 마치 눈썹이 세 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 ‘삼미자’라는 별명을 가졌다. 자식과 어머니를 전염병으로 떠나보내기도 한 정약용은 천연두에 걸린 사람의 상처에서 딱지를 긁어내 멀쩡한 사람의 몸에 넣어 병을 예방하는 ‘인두법’ 등을 연구하기도 했다. 1798년에는 홍역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의학서적 ‘마과회통’을 발표했다.


마마신을 보내는 역할을 했던 대신마누라. 사진=장진희 기자


신으로 받들어진 전염병

조선시대에 ‘호환마마’는 백성들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호환은 호랑이에게 화를 입는 것이고 마마는 천연두의 다른 이름. 백성들은 임금을 높여 부르는 말인 ‘상감마마’처럼 천연두를 인격화(인간으로 생각함)해 마마라고 추켜세우면 저절로 물러갈 것이라고 믿었다. 이들은 천연두를 마마신, 호구별성, 호구마마 등으로 부르며 신으로 떠받들어 모셨다. 마마신을 돌려보내기 위해 굿을 벌이기도 했다. 백성들이 굿을 벌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전시에서 공개됐다.

마마신이 물러갈 수 있게 도와주는 ‘대신마누라’라는 신을 그린 그림도 감상할 수 있다. 상쇠방울과 부채를 쥐고 있는 여성으로 표현된 대신마누라는 여러 신을 배송(신앙의 대상을 돌려보내는 의식)하고 굿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어린이동아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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