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도 일제 필통 사 주세요. 재승이는 가방도 필통도 연필도 모두 외제예요.”
며칠 전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엄마를 졸라댔다.
친구들이 외국 학용품을 꺼내서 자랑할 때는 기죽지 않으려고 우리 나라 물건이 더 좋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재승이가 보여 준 필통이 너무 멋져 보여서 나도 속으로는 그것이 무척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뭐? 일제 필통? 네 필통이 어디가 어때서 일제를 찾아?”
하며 엄마는 내 마음도 모르고 꾸중만 하셨다.
나는 너무 속이 상해서 멀쩡한 필통을 칼로 긋기도 하고 집어던지기도 하였다.
‘창피하게 나만 국산이야. 이게 고장나면 엄마가 일제 필통을 사 주실지도 몰라.’
다음 날, 엄마는 신문에서 북한 문구 전시회 소식을 보시더니
“잘됐다. 마침 6일 글짓기 대회 시상식 때문에 서울 가야 하니까 우리도 전시회에 가 보자.”
하고 말씀하셨다.
‘거기에 가면 필통을 사 주실까?’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전시회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북한 문구전을 보면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우리 것에 비해 너무나 촌스러운 색깔의 연필, 인쇄도 이상하고 거칠어 보이는 공책, 딱딱해서 잘 지워지지도 않을 것 같은 지우개, 이상하게 생긴 칼과 필통, 도대체 이게 어느 시대 물건인가 싶을 만큼 온통 촌스러운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엄마, 이걸 북한 애들이 쓴단 말이에요?”
“그럼, 이것도 못 사 쓰는 아이들이 많을 거다. 물건이나 많겠니? 불쌍도 하지. 엄마도 어릴 때 이런 비슷한 학용품을 썼어. 그래도 얼마나 소중하게 아껴 썼다구. 물건을 사기도 어려웠으니까. 너희들은 안 아껴 쓰지?”
엄마는 빨간 선이 쳐 있는 전시장의 줄 너머로 학용품을 보며 옛날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북한 아이들은 저런 것도 부족하구나.’
갑자기 멀쩡한 필통을 창피하다고 못살게 굴었던 일이 후회되었다.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그래서 북한 어린이들에게도 좋은 우리 학용품을 쓸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북한 어린이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이렇게 말하겠지?
“와, 이런 학용품도 다 있어? 너무 예쁘고 신기하다. 이거 어떻게 쓰는 거야?”
지은지<서울 덕의교 3-3>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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