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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History] 전국으로 확산된 광주학생운동
  • 장진희 기자, 이지현 기자
  • 2019-11-03 1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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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 발발

[역사 속 그날] 역사 속 이번 주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기록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시작으로 근현대까지의 같은 날 있었던 사건들을 한 주 단위로 파악합니다. 이번 주는 11월 3∼9일 발생했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살펴보세요.


지난해 광주학생운동 89주년을 기념하는 만세 재현 행사가 광주에서 펼쳐지고 있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제공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 발발

매년 11월 3일은 ‘학생독립운동기념일’입니다. 이날은 1929년 일제에 항거한 광주학생운동이 발발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됐습니다. 1929년 광주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일제강점기인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일본인 중학생이 당시 광주여고보에 재학 중이던 이광춘과 박기옥을 희롱했습니다. 보다 못한 광주고보생들이 일본 학생들과 싸움을 벌였고, 일이 커지자 출동한 일본 경찰은 일본 학생들 편만 들며 조선 학생들을 나무랐습니다. 이 사건은 광주학생운동을 일으킨 도화선이 됐지요.

소식을 듣고 화가 난 광주 학생들은 11월 3일 일제의 탄압과 차별교육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피해자였던 박기옥도 광주여고보 학생들을 주도해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그날은 일왕 메이지의 생일인 ‘명치절’이었기 때문에 기념행사에 동원된 학생들이 시내에 많았습니다. 행사가 끝나자 학생들은 광주 시내에 모여 항의하는 뜻을 알렸고, 일부 학생들은 나주 사건을 편파적으로 보도한 광주일보사로 몰려가 윤전기(잉크가 묻은 원통형의 판을 종이에 찍어 인쇄하는 기계)에 모래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시위가 격렬해지자 일제는 시위에 참여한 조선인 학생 수십 명을 체포했습니다. 이후 광주 시내에 있는 모든 중등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습니다. 학생들의 시위 및 체포 소식은 신간회(1920년대 후반 좌우익 세력이 합작해 결성한 항일단체)에까지 전해졌고 이들은 광주 지역의 학생비밀결사 단체 등과 힘을 모아 전면적인 항일운동을 이어갔습니다. 11월 11일 저녁 독립운동 참여를 독려하는 격문(어떤 일을 알리고 부추기는 글)이 뿌려졌고, 다음날 광주 시내에서 광주고보, 광주농업학교, 광주여고보, 광주사범학교 학생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격문에서는 일제에 △언론·출판·집회·결사·시위의 자유 보장 △민족 문화와 사회과학 연구의 자유 보장 등 9개 항목을 요구했습니다. 이날 시위로 수백 명의 학생이 일본 경찰에 체포·구금됐습니다. 광주 지역의 시위는 목포, 나주 등 인근 지역으로 퍼져갔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으로 시위가 확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12월 2일 서울의 학생들은 전국의 학생과 민중의 총궐기를 촉구하는 격문을 뿌렸습니다. 서울의 일부 학교 학생들은 동맹휴교를 하며 일제에 저항했습니다. 12월 13일까지 시위가 계속되었고 총 1만2000여 명의 학생들이 참가했다고 합니다. 학생을 중심으로 한 시위는 1930년 3월까지 전국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방문한 학생들. 동아일보 자료사진 


1998년 11월 5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 4년 여 복원 공사 후 재개관

사적 제324호로 지정된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일제강점기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수난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곳입니다.

서대문형무소는 1907년 일본인 건축가 시텐노 가즈마의 설계로 착공되어 이듬해인 1908년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게 됩니다. 일제강점기 때는 주로 민족지도자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됐으며, 1960년 4·19혁명 이후부터 1980년대에는 정치인·기업인·운동권 학생 등이 이곳을 거쳐 갔지요. 서울시는 이곳을 독립운동의 역사교육 현장으로 알리기 위해 옥사와 사형장 등을 원형대로 복원하고 1998년 역사관을 열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내부에는 3·1운동 때 유관순 열사가 투옥됐던 지하 여자감옥과 김구·안창호·여운형·한용운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었던 1평 남짓한 좁은 감옥들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김상옥

1919년 11월 9일, 김원봉·이종암 등 13명, 길림성에서 의열단 조직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해외로 옮긴 독립운동가들 중 일부는 일제의 무력에 대항할 더 강력한 독립운동 단체를 조직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919년 11월 9일 밤, 만주 길림성에서 김원봉, 이종암 등 13명의 독립지사들은 민족주의(민족에 기반한 국가 형성을 주장하는 신념) 노선을 지향하는 항일비밀결사인 의열단을 조직하게 됩니다.

의열단이라는 이름은 ‘정의(正義)로운 일을 맹렬(猛烈)히 실행한다’는 뜻을 담고 있지요. 당시 만주와 중국 본토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들이 미온적이고 온건하다고 본 의열단은 직접적 투쟁 방법인 암살과 파괴·폭파 등의 방법을 통해 독립운동을 해나기로 하고 1920년대에 김상옥 등 의열단 단원들은 일본 고위 관료 암살과 관공서 폭파 등의 활동을 이어 나갔습니다.​

▶어린이동아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이지현 기자 easy27@donga.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어린이동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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