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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History] 냉전의 벽 허물었던 1988 서울 올림픽
  • 장진희 기자, 이지현 기자
  • 2019-09-15 13: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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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그날] 역사 속 이번 주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기록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시작으로 근현대까지의 같은 날 있었던 사건들을 한 주 단위로 파악합니다. 이번 주는 9월 15∼21일 발생했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살펴보세요.

1988년 9월 17일, 제24회 서울 올림픽 대회가 막을 올림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서 160개 참가국을 상징해 160명으로 구성된 기수단이 올림픽기를 들고 잠실주경기장에 입장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서 160개 참가국을 상징해 160명으로 구성된 기수단이 올림픽기를 들고 잠실주경기장에 입장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1988년 서울 올림픽은 ‘평화 올림픽’이라고도 불립니다.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는 올림픽의 기본 정신과는 위배되게 1972년 (독일) 뮌헨부터 1984년 (미국) LA 대회까지 4차례의 올림픽은 세계인이 참여하는 축제가 아니라 대립과 갈등으로 얼룩진 모습이었습니다. 미국과 소련(옛날의 러시아)을 중심으로 하는 냉전(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국가들이 대립한 상태) 분위기가 형성된 가운데 열렸기 때문입니다.

서울 대회에 와서야 올림픽은 전 세계를 아우르는 축제로 정착했습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반발한 미국을 비롯한 한국·서독·일본 등 60여 개국의 불참으로 1980년 (소련) 모스크바 올림픽은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147개 회원국 중 80여 개국만 참가하는 반쪽 대회에 그쳤습니다. 그로부터 8년 후인 서울 올림픽에는 160개국이 참가해 당시 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의 대회가 진행된 것이지요.

서울 올림픽은 변방에 있는 나라였던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가 됐습니다. 우리나라는 서울 올림픽 이후 사회주의 국가와 수교(외교 관계를 맺음)를 하거나 문화 교류를 넓혀 나갔습니다. 이 대회에서만 세계 신기록 33개 등 풍성한 기록이 나왔습니다. 한국은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를 획득해 종합순위 4위를 확정지었습니다.

양궁, 레슬링, 유도 등 한국이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기록한 종목은 이후 대회에서도 메달을 모으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습니다. 이 종목들은 서울 올림픽 개최 당시의 지원을 밑거름으로 크게 성장한 것이지요.​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서 굴렁쇠를 굴리는 윤태웅 군



[한 뼘 더] 화제의 서울 올림픽 개회식​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더욱 특별하게 빛낸 화제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개회식에서 당시 8세였던 한 소년이 굴렁쇠를 굴리며 경기장을 가로지르던 모습은 세계인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굴렁쇠 퍼포먼스는 동서화합을 상징하는 순간이 됐습니다. 올림픽 종주국인 그리스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에서 소년이 종이배를 타고 호수를 유유히 가르는 장면이 ‘굴렁쇠 소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지요.

서울 올림픽의 공식 주제곡이었던 ‘손에 손잡고’는 개회식의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대회 열기를 타고 ‘손에 손잡고’는 유럽과 동구권 가요계에서 선풍적 인기를 일으켰습니다. 또 이 곡은 당시 스웨덴 가요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지요. 주제곡을 부른 그룹 코리아나는 우리나라와 교류가 적었던 공산권 국가들의 러브콜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경복궁 전경

1872년 음력 9월 16일, 경복궁 준공

서울 종로구에 있는 경복궁은 조선 제1대 왕인 태조(1335∼1408)가 1395년에 창건(건물을 처음으로 세움)한 궁궐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사라졌지만 이후 왕들은 재정이 부족해 재건(허물어진 건물을 다시 일으켜 세움)할 생각을 하지 못했지요. 그러다가 조선 제26대 왕인 고종의 즉위와 함께 당시의 섭정(국왕에게 사정이 생겼을 때 국왕 대신 나라를 다스리는 일 또는 그 사람)이던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경복궁 중건(보수하거나 고쳐 지음)이 추진되지요.

1865년에 영건도감(조선시대 국가적인 건축공사를 담당하던 임시 관청)을 설치해 공사에 착수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추락한 왕실의 존엄과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서 경복궁의 재건을 서둘러 적극적으로 추진했지요. 처음에는 기부금을 받고 백성들의 노동력을 빌리는 데에도 신중해서 민원을 크게 사지 않았지만, 공사가 진행되며 목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해 나라가 벼슬까지 파는 일 등이 발생했지요. 지금은 멋진 모습을 자랑하는 경복궁이지만 중건 당시에는 왕족에서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의 원망을 받으며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로 인한 국가의 경제적인 타격은 흥선대원군 몰락의 원인이 되었지요.


산악인 고상돈 씨


1977년 9월 15일, 등산가 고상돈 한국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

산악인 고상돈 씨는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최초의 한국인입니다. 청주상업고를 거쳐 청주대를 졸업한 뒤 대한산악연맹 충북연맹 이사를 지냈습니다. 1965년 충북산악회에 가입한 것을 시작으로 산악인이 되었지요.

1977년 한국에베레스트원정대의 일원으로 참가해 1977년 9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의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에베레스트를 등정(산 등의 꼭대기에 오름)한 나라가 되었지요.

고상돈 씨는 1979년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인 알래스카산맥의 매킨리산 원정대의 대장이 되어 우리나라 최초로 매킨리산 정상을 정복했으나 하산하다 추락해 대원 이일교 씨와 함께 숨지고 말았습니다. 고상돈 씨의 도전은 한국 산악인의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되었고 이후에 우리나라 산악인들의 세계적인 도전이 이어졌지요.

▶어린이동아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이지현 기자 easy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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