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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History] 1400년 넘는 긴 잠에서 깨어난 무령왕릉
  • 장진희 기자
  • 2019-07-07 15: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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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7월 8일, 백제 무령왕릉, 충남 공주에서 발굴

[역사 속 그날]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입니다. 기나긴 역사를 간직한 우리나라에선 과거에 어떤 중대한 사건들이 있었을까요? 매주 월요일 선보이는 ‘역사 속 그날’ 코너를 통해 역사 지식을 쑥쑥 키워보세요.

역사 속 이번 주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기록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시작으로 근현대까지의 같은 날 있었던 사건들을 한 주 단위로 파악합니다. 이번 주는 7월 7∼13일 발생했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살펴보세요.

1971년 7월 8일, 백제 무령왕릉, 충남 공주에서 발굴


충남 공주시에 위치한 무령왕릉 전경. 문화재청 제공

1971년 여름, 1400년 넘게 긴 잠을 자고 있던 무령왕릉이 깨어났습니다. 무령왕릉은 충남 공주의 백제 송산리 고분군에서 장마철을 맞아 배수로 공사를 진행하던 한 인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습니다. 뭔가 심상찮은 유구(옛 건축의 흔적)가 새로 발견됐다는 소식에 급히 발굴조사단이 꾸려졌고, 1971년 7월 8일 오후 무덤 입구를 막고 있던 벽돌을 드러내고 무령왕릉 안에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습니다.

무령왕릉에서는 백제 제25대 왕이었던 무령왕(462∼523)과 왕비의 금제 관 장식, 금제 뒤꽂이, 금제 목걸이와 귀걸이, 목제 베개와 발 받침, 금동제 신발, 청동거울, 무덤을 지키기 위한 용도로 제작된 석수(동물 모양의 돌 조형물), 무덤 조성 배경을 기록한 지석(무덤 주인에 대해 기록한 돌판)을 비롯한 29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곳에서 나온 유물 중 현재 국보로 지정된 것만 12점입니다.

‘영동 대장군 백제 사마(무령왕의 본명)왕∼’으로 시작하는 ‘무령왕릉 지석(국보 제163호)’은 손에 꼽히게 중요한 유물입니다. 바로 이 지석으로 무덤의 주인이 백제의 무령왕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석에 따르면 무령왕은 523년 62세의 나이로 숨졌고 525년 무덤에 안장됐습니다. 무령왕비는 526년 사망해 529년 무령왕 옆에 안치됐습니다. 지석은 당시 백제의 사회·문화상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해 백제사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됐지요.

국보 제154호로 지정된 무령왕 금제 관 장식 한 쌍도 있습니다. 0.2∼0.8㎜의 얇은 금판에 넝쿨무늬와 연꽃무늬가 표현됐습니다. 넝쿨들이 위로 솟아오르고 있고 맨 위에는 활짝 핀 연꽃이 있지요. 앞면에 구슬 모양 꾸미개들을 금실로 연결해 달아 화려하게 장식됐습니다. 국보 제155호인 무령왕비 금제 관 장식 한 쌍은 왕의 것에 비해 약간 작고 단정한 편입니다. 왕의 관 장식보다 더 화려하게 만들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종 황제. 동아일보 자료사진


1907년 7월 12일, 일본이 헤이그 밀사 사건 책임을 물어 고종 황제 퇴위 결정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황제 폐위(왕이나 왕비 등의 자리를 폐함)를 진행하기로 결심합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7월 7일 일본 총리대신 보낸 전보에서, ‘황제의 밀사 파견은 대한제국이 일본에 대해 공공연히 적의(적대하는 마음)를 표현한 조약 위반 사실이므로 일본은 대한제국에 선전포고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지요. 이완용·송병준 등 일제에 아부하는 친일 매국 대신들과 일제의 강요로 한일협약을 어겼다는 책임을 지고 고종은 7월 20일 퇴위하게 됩니다.

고종의 뒤를 이어 순종이 즉위하고, 고종은 태황제(상황을 높여 부르는 말)가 되었으나 실질적으로 아무 힘이 없는 자리였지요. 고종은 1919년 승하(세상을 떠남)하게 됩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는 더글러스 맥아더(가운데)

1950년 7월 10일, 트루먼 미국 대통령, 유엔군 총사령관에 맥아더 임명​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일어나자 해리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은 더글러스 맥아더를 국제연합(UN·유엔) 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합니다.

맥아더는 태평양전쟁 미군 최고사령관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진주만을 기습한 일본을 공격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 1945년 8월 일본을 항복시키고 일본점령군 최고사령관이 됐었지요.

UN군 총사령관으로 부임한 맥아더는 6·25전쟁에 참여해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합니다. 맥아더는 북한군의 진격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적 배후에 상륙작전을 감행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지요. 이에 미 합동참모본부와 해군 및 해병대 측은 인천의 자연적 조건이 대규모 상륙작전을 하기에는 부적절하다며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이유로 오히려 북한군의 방어가 부실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맥아더의 예상은 맞아떨어졌지요. 이를 계기로 전력을 회복한 국군과 UN군은 상륙작전을 시작한 후 약 15일 만에 38도선 이남 지역을 모두 다시 차지하게 됩니다.​

▶어린이동아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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