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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History] 4강 신화와 붉은 악마
  • 이지현 기자, 장진희 기자
  • 2019-06-16 14: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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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그날]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입니다. 기나긴 역사를 간직한 우리나라에선 과거에 어떤 중대한 사건들이 있었을까요? 매주 월요일 선보이는 ‘역사 속 그날’ 코너를 통해 역사 지식을 쑥쑥 키워보세요.

역사 속 이번 주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기록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시작으로 근현대까지의 같은 날 있었던 사건들을 한 주 단위로 파악합니다. 이번 주는 6월 16∼22일 발생했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살펴보세요.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응원하는 시민들의 모습. 동아일보 자료사진

2002년 6월 22일 한국 축구대표팀, 스페인 꺾고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4강 진출

2002년,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축구 월드컵을 개최하게 됩니다. 5월 31일부터 6월 30일까지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매일 같이 축제의 장이었지요.

이 대회에서 한국은 사상 처음 16강 본선 진출은 물론 4강에도 진출해 전 세계인을 놀라게 했습니다.

2002 한일 월드컵은 그 어느 대회보다 이변이 많았던 대회였습니다. 2년 연속 월드컵 우승을 노렸던 프랑스가 개막전에서 세네갈에 패한 후 16강에도 오르지 못했고, 막강한 우승후보였던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도 제대로 실력발휘를 못했지요. 반면 터키와 한국은 나란히 3, 4위에 올랐습니다.

특히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가장 큰 이변을 연출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Guus Hiddink) 감독의 지휘 아래 D조 예선 폴란드와의 1차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월드컵 첫 승을 이뤄냈습니다. 이후 미국과 1대 1로 무승부를 기록한 뒤 포르투갈전에서 승리하면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지요. 그리고 16강에서 축구 강국인 이탈리아를 이기고 8강에 올랐으며, 8강전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스페인을 꺾고 4강에 진출했습니다.

월드컵 기간 내내 한국 축구팀 서포터즈인 ‘붉은 악마’를 비롯해 전 국민이 거리 곳곳마다 붉은색 옷을 입고 응원물결을 이루면서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4강 진출과 새로운 응원 문화는 한국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됐지요. 이후 월드컵 경기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준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의 해외 진출도 활발히 이뤄졌습니다.​

[한 뼘 더] 붉은 악마는 왜 붉은 악마가 됐을까?

붉은 악마는 1995년 12월에 결성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지원 클럽을 뜻하는 말입니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당시 한국 대표팀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4강에 오르자, 외국 언론들이 한국 대표팀을 ‘붉은 악령’(Red Furies) 등으로 부르며 놀라움을 표한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표현이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붉은 악마’로 표기되었고, 영문 역시 좀 더 일반적인 단어인 ‘Red Devils’로 바뀌어 쓰이게 되었지요. 트레이드마크는 중국 고대 신화 속 전쟁의 신으로 알려진 치우천왕(蚩尤天王)입니다.​


안타깝게 숨진 단종의 넋을 기리기 위해 강원도 영월에서 유교식 제례가 치러지고 있는 모습. 문화재청 제공​


1457년 음력 6월 21일 단종, 강원도 영월로 유배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세상을 떠난 문종의 뒤를 이어 단종은 12세의 나이로 1452년 왕위에 올랐습니다. 문종은 죽음을 앞두고 김종서, 황보인 같은 믿을만한 신하들에게 단종을 잘 보필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일찍이 어머니인 현덕왕후를 여의고 아버지마저 잃은 어린 단종에게는 왕실에서 의지할 어른이 많지 않았습니다.

숙부인 수양대군은 단종이 처한 상황을 알고 임금 자리를 탐내기 시작했습니다. 수양대군은 어린 왕을 지키는 김종인과 황보인을 비롯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신하들을 모조리 죽게 했습니다. 수양대군이 안평대군을 죽이고 금성대군을 유배 보내는 등 자신의 형제들마저 공격하자 궁지에 몰린 단종은 1455년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줬습니다. 수양대군은 왕위에 올라 세조라 불리게 됩니다.

세조는 상왕(자리를 물려주고 들어앉은 임금)이 된 단종을 다시 왕위에 앉히려는 사육신 사건이 일어나자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봉(작위를 낮춤)시키고 1457년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보냈습니다. 영월에서의 생활도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단종을 다시 왕위에 앉히려는 계획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단종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강요당했고, 결국 같은 해 10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성전기회사 전경


1901년 6월 17일 한성전기회사, 전등 점등식 열어​

1901년 6월 17일, 서울 시내에서 처음으로 전등 점등식이 열렸습니다. 1898년 1월 설립한 한성전기회사가 주관한 행사였지요.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될 당시 한반도는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1895년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가 죽임을 당했고 1896년에는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이 있은 뒤였기 때문입니다.

전기사업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 고종은 근대화 정책의 일환으로 한성전기회사의 사업 신청을 허가했습니다. 이에 한성전기회사는 서울 시내 전등 및 전차 사업의 운영권을 갖게 됐지요. 독자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기에는 돈과 기술력에 한계가 있었기에 1898년 2월 한성전기회사는 미국의 사업가 콜브란과 손을 잡았습니다. 이들은 ‘남대문∼종로∼동대문∼홍릉’ 노선의 전차 건설계약을 맺고 1899년 개통시켰습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 한성전기회사는 경영권을 미국에 넘겨야 했습니다. 이후 1904년 한미전기회사로 이름을 바꿨다가 1909년에는 일제의 손에 완전히 넘어갔습니다.​

▶어린이동아 이지현 기자 easy27@donga.com,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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