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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 체험활동] 조선 왕조를 세운 이성계
  • 어린이동아 취재팀
  • 2019-05-19 13: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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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그날]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입니다. 기나긴 역사를 간직한 우리나라에선 과거에 어떤 중대한 사건들이 있었을까요? 매주 월요일 선보이는 ‘역사 속 그날’ 코너를 통해 역사 지식을 쑥쑥 키워보세요.

역사 속 이번 주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기록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시작으로 근현대까지의 같은 날 있었던 사건들을 한 주 단위로 파악합니다. 이번 주는 5월 19∼25일 발생했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살펴보세요.


태조 이성계의 어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1388년 음력 5월 22일,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함

고려말, 원나라를 몰아내고 중국 땅에 새롭게 들어선 명나라가 고려의 철령 지역을 자신들이 다스리겠다며 우왕(고려 제32대 왕)을 압박했습니다. 우왕과 고려 장수인 최영은 명나라 요동 지방을 먼저 공격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장수였던 이성계(1335∼1408)는 “강력한 힘을 가진 명을 현실적으로 이길 수 없다”며 이 계획에 반대했지만 워낙 완강한 우왕과 최영의 뜻을 꺾지는 못했지요.

하는 수 없이 군대를 이끌고 요동으로 떠난 이성계는 1388년 음력 5월 압록강에 있는 위화도라는 섬에 도착했습니다. 몇날 며칠 주변 상황만 살피던 이성계는 명나라에 쳐들어가지 않고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되돌아갑니다. 이를 ‘위화도 회군’이라고 합니다.

개경으로 향한 이성계는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과 창왕(고려 제33대 왕)을 차례대로 몰아냈습니다. 힘없는 허수아비 같은 공양왕(고려 제34대 왕)을 왕위에 앉힌 이성계는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이성계는 백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문신인 정도전과 함께 귀족들이 부정하게 차지한 땅을 모조리 거둬들여 나라가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이밖에도 세금을 낮추는 등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펼쳐 이들의 마음을 얻어냈지요.

이후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를 세울 때 걸림돌이 될 정몽주를 제거하고 개경에서 공양왕에게 선위(살아있는 왕이 다른 이에게 왕위를 물려줌)를 받는 형식으로 1392년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왕권을 차지한 태조 이성계는 이듬해 나라의 이름을 ‘조선’으로 바꾸고 1394년 한양에 궁궐을 짓고 수도를 이전했습니다.​

[한 뼘 더] 태종 이방원과 왕자의 난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 나라를 세운 태조 이성계의 재위 기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습니다. 1392년부터 1398년까지로 6년밖에 되지 않지요. 그가 일찍 왕위에서 물러난 이유는 ‘왕자의 난’ 때문입니다.

태조는 첫째부인과 그 사이에 낳은 아들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둘째부인과 낳은 여덟 째 아들 이방석을 세자에 책봉했습니다. 태조의 다섯 째 아들이자 정몽주를 죽이는 등 조선 건국에 한몫을 한 이방원은 이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 이복동생인 이방석을 살해했지요. 이를 ‘왕자의 난’이라 합니다.

이후 정치적 입장을 고려한 이방원은 둘째 아들인 이방과가 왕위를 물려받게 했습니다. 정종 이방과가 재임한지 2년 만인 1400년 이방원은 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고 마침내 조선 제3대 왕이 되어 18년 간 재임했지요.​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사도세자와 영조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제공


1762년 음력 5월 21일, 사도세자 숨을 거두다

음력으로 1762년 5월 21일은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가 숨을 거둔 날입니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사랑을 듬뿍 받던 아들이었습니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첫째 아들인 효장세자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등지고, 영조가 42세가 되어서야 다시 얻은 아들이었죠. 영조는 사도세자가 태어난 다음 해에 그를 왕세자로 책봉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대와는 다르게 사도세자는 자라며 동물과 신하를 죽이고 괴롭히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러 아버지 영조의 신임을 잃게 됩니다. 사도세자는 오늘날로 치면 조현병을 앓았다고 전해집니다.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10대의 이른 나이부터 정치에 발을 들인 사도세자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결국 영조의 명으로 폐위된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명으로 뒤주(쌀을 담아두던 독)에 갇혀 8일 만에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게 되었지요.​


국립현충원에 있는 월남전 참전 호국영령의 묘역. 동아일보 자료사진


1992년 5월 25일, 베트남전 고엽제 피해자 국가유공자 대우​

베트남전은 1960년에 결성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이 베트남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위해 북베트남의 지원 아래 남베트남 정부와 이들을 지원한 미국과 벌인 전쟁입니다. 월남전이라고도 부르지요.

한국은 베트남전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보냈습니다. 한국은 1964년 9월 의료진을 중심으로 한 비전투요원을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30만 명이 넘는 전투병력을 베트남에 보냈지요. 그 과정에서 1만6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많은 참전 군인들이 고엽제 피해 등의 후유증에 시달렸습니다. 고엽제는 식물을 말라 죽게 하는 제초제로 전쟁 과정에서 미군이 숲속에 숨은 적을 색출하기 위해 다량으로 사용했지요. 이 고엽제에 노출된 병사들이 각종 암, 신경계 장애 등을 앓았고 그 후손들도 유전적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유엔(UN·국제연합)은 베트남전쟁 이후 고엽제 사용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있습니다.

이지현 기자 easy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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