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3월 10일, 독립운동가 안창호 선생 사망
[역사 속 그날]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입니다. 기나긴 역사를 간직한 우리나라에선 과거에 어떤 중대한 사건들이 있었을까요? 매주 월요일 선보이는 ‘역사 속 그날’ 코너를 통해 역사 지식을 쑥쑥 키워보세요.

“나는 밥을 먹는 것도 대한의 독립을 위하여, 잠을 자는 것도 대한의 독립을 위하여 해왔다. 이것은 나의 몸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해외 독립운동의 선구자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1878∼1938)은 1938년 3월 10일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하며 독립운동에 발을 내딛었던 안 선생은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인친목회를 조직했습니다. 1905년 을사조약(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체결한 강제 조약) 체결 소식을 들은 안 선생은 귀국해 1907년 항일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합니다. 같은 해 평양에서 대성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을 통한 계몽 활동에도 힘썼지요.
1911년 다시 미국으로 간 안 선생은 1913년 민족운동단체인 흥사단을 창설하는 등의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간 안 선생은 같은 해 4월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직무를 대리하는 사람)를 맡기도 했지요. 이후 1937년 일제가 수양동우회와 관련된 지식인을 잡아들이기 시작하며 흥사단 동지와 함께 일본 경찰에 붙잡혀 수감됐다가 병을 얻어 같은 해 12월 보석되었으나 이듬해 3월에 경성대학부속병원에서 끝내 눈을 감았습니다.

정조의 어진

1998년 금융기관들이 금모으기 운동으로 수집한 금이 한국은행 금고에 들어온 모습
IMF에서 빌린 195억 달러를 갚고 외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국민들은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했어요. 1998년 3월 14일 행정자치부는 금 모으기 운동 1차 모금 결과를 발표하여, 국민 349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금 225톤(t)이 수집됐다고 발표했지요. 또 수집한 금 중 18억2000만 달러어치인 196.3톤이 수출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어린이동아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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