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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보물찾기]‘귀주대첩 998주년’ 고려 지킨 강감찬 장군
하늘에서 떨어진 별



일러스트 임성훈

2주에 한 번씩 ‘한국사 보물찾기’가 연재됩니다. 국보, 보물, 사적과 같은 우리 문화유산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알기 쉽게 풀이 해주는 코너입니다. 우리 문화유산도 배우고 한국사 상식을 쑥쑥 높여 보아요.

 

 

강감찬 장군(948∼1031)이 거란군을 무찌른 귀주대첩 998주년을 맞아 서울 관악구에서 20일과 21일 ‘2017년 관악 강감찬축제’가 열립니다. 강감찬 장군의 출생과 관련된 설화를 무용, 연극, 노래 등 공연으로 표현하고 출병식(군사를 전쟁터로 내보내는 의식)과 전승행렬(전쟁에서 이긴 뒤 행진하는 것)이 재현되지요.

 

강감찬 장군은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3대 영웅으로 꼽힙니다. 35세의 늦은 나이로 고려 제6대 왕인 성종(960∼997) 때 과거에 장원급제(과거시험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으로 합격하는 것)한 강감찬 장군은 나라의 전장제도나 제사·과거·손님접대 등을 담당했던 ‘예부’의 시랑(차관)에 오르기도 했지요.

 

강감찬 장군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더 알아봅시다.

 

 

별이 떨어진 곳 ‘낙성대’

 

낙성대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 관악구청 제공
 

고려시대 역사책인 고려사에는 강감찬 장군의 탄생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집니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낙성대(落星垈)’(서울 관악구)와 관련된 이야기에요.

 

어느 날 왕이 보낸 사신(임금의 명령을 받고 외국에 사절로 가는 신하)이 캄캄한 밤에 금주(서울 관악구 일대)로 돌아오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 때 큰 별 하나가 어떤 집 위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그 집 부인이 사내아이를 낳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사신이 그 아이를 개경(북한 개성)으로 데려가 길렀는데 그가 바로 강감찬 장군이었다고 합니다.

 

낙성대는 이 설화에 따라 ‘별이 떨어진 터’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의 낙성대 공원에는 백성들이 장군의 공적을 찬양하기 위해 13세기 경 장군의 집터에 세운 4.48m의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삼층석탑의 1층 몸돌에는 ‘강감찬낙성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설화의 내용을 뒷받침해주지요.

 

또 다른 일화도 별과 관련돼 있습니다. 고려를 방문한 중국 송나라 사신이 강감찬 장군을 보고는 절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문곡성을 못 본지 오래더니 여기에 있었구나.” 문곡성은 학문이나 예술을 맡아서 관리하는 별을 뜻해요. 강감찬 장군의 학식이 뛰어나다는 점을 표현한 것이지요.

 

 

거란이여 물러가라

 

성종이 고려를 다스릴 때 고려 북쪽인 지금의 중국에서는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가 큰 힘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고려는 거란과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기 위해 북진정책(나라의 세력을 북쪽으로 뻗어 나가려는 정책)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거란도 호시탐탐 고려를 침략할 기회를 엿보았답니다. 거란은 고려를 세 번 침략했는데 세 번째 침략이 일어났던 1018년 70세이던 강감찬 장군의 활약상이 두드러집니다.

 

1018년 12월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에 쳐들어왔어요. 거란이 고려에게 넘겨 준 강동 6주 지역을 다시 빼앗기 위해서였지요. 고려는 강감찬 장군을 지휘관으로 삼고 20만 대군을 이끌도록 했지요. 강감찬 장군은 굵은 밧줄로 소가죽을 연결해서 흥화진(평안북도 의주군) 동쪽 냇물을 막고 1만2000명의 군대를 주변 산골짜기에 숨겨두었어요. 거란군이 흥화진에 도착하자 막아둔 냇물을 한 번에 내려 보내고 군대를 이용해 총 공격을 지시했지요. 냇물에 휩쓸린 거란군은 크게 패했답니다. 이 전투가 흥화진 전투이지요.

 

1019년 2월에는 후퇴하는 거란군을 추격해 귀주(평안북도 구성군)에서 크게 물리쳤습니다. 이때는 거란군을 좁은 계곡으로 유인하는 작전을 펼쳤습니다. 거센 바람이 거란군 쪽을 향해 불기 시작하자 강감찬 장군은 화살을 퍼붓도록 지시했지요. 거란의 10만 대군 중 남은 이는 2000여 명밖에 되지 않았답니다. 이 전투를 바로 ‘귀주대첩’이라고 합니다.

 

▶심소희 기자 sohi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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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8 23:25:5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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