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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흔적으로 보는 역사
전쟁기념관 특별기획전 ‘병자호란, 그 기억과 반성’

병자호란은 1636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있었던 전쟁으로 청나라가 조선을 침입해 일어났다.

 

조선은 이 전쟁에서 패배하고 청나라를 임금의 나라로 모시기로 하는 굴욕적인 조약을 맺게 된다.

 

전쟁기념관(서울 용산구)은 병자호란 종전(전쟁이 끝남) 380주년을 맞이하여 11월 19일까지 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특별기획전 ‘병자호란, 그 기억과 반성’을 연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조선의 산하, 전운이 감돌다’ ‘뒤바뀐 천하, 병자호란’ ‘북벌과 부국강병의 꿈’ ‘병자호란을 돌아보다’라는 4개의 주제로 구성된다.

 

전쟁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은 물론 국립중앙박물관, 경기도박물관, 당진 충장사, 만해기념관 등에서 모은 귀한 유물 92점이 한자리에 전시된다. 유물을 통해 병자호란의 역사를 짚어보자.

 

 

장군의 마지막 옷 ‘녹피방령포’

 

녹피방령포. 전쟁기념관 제공
 

조선 제15대 왕인 광해군이 명나라를 대우하면서도 후금을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는 중립적인 외교정책을 펴면서 후금과 조선은 큰 마찰 없이 지냈다. 하지만 광해군 뒤를 이은 인조가 명나라에 더 친근한 외교정책을 펴자 명나라를 정복할 계획이었던 후금은 조선을 먼저 굴복시킬 계획을 세우게 된다. 1627년 후금이 조선을 쳐들어오고 정묘호란이 일어난다.

 

이때 안주성(지금의 평안남도) 전투에서 남이흥 장군이 후금에 끝까지 맞서 싸웠다. 패배의 기미가 보이자 남이흥 장군은 화약고를 폭파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적군에 인질로 끌려갈 바에야 전사(전쟁에서 죽음)하는 쪽을 택한 것.

 

녹피방령포는 남이흥 장군이 전쟁 당시 입었던 옷이다. 녹피는 사슴 가죽으로 만들어졌다는 의미이고 방령포는 옷의 깃이 네모지다는 뜻. 방령포에는 장군이 화살을 맞아 흘린 핏자국이 남아있어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영원한 충성 새긴 ‘추련도’

 

추련도
 

정묘호란 이후 후금과 조선은 서로 형제의 예를 지킨다는 조약을 맺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조선 내에서 여전히 오랜 시간 충성을 다해온 명나라와의 관계를 더 중시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 결국 힘이 더욱 커진 후금은 청나라가 되어 다시 조선을 쳐들어왔고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된다.

 

병자호란 당시 임경업 장군은 백마산성(지금의 평안북도)을 지킨 인물. 그는 명나라에 대한 예를 중시하는 인물이었다. 추련도는 임경업 장군이 아끼던 검이다. 추련은 가을에 피는 연꽃이라는 뜻으로 절개를 나타낸다. 칼날에는 명나라에 대한 충성을 지키겠다는 의미의 시가 새겨져 있다.

 

임경업은 백마산성에서 청나라 군대를 막으며 저항했으나 결국, 청나라 세력에 무너져 남한산성(지금의 경기 광주시)까지 포위되게 된다.

 

 

병자호란의 난중일기 ‘병자록’

 

병자록
 

청나라 군대에 의해 포위된 남한산성에서 인조와 신하, 백성들은 고립된다. 한 달 치 식량뿐이던 남한산성 안에서는 자급자족이 불가능했다. 결국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백성들을 보다 못한 인조는 남한산성 밖으로 나가 청에 굴복하게 된다. 청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행한 이 사건을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부른다.

 

당시의 이야기는 당시 문신이던 나만갑이 쓴 병자록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1636년 12월 청군이 침입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부터 다음해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인질로 청에 잡혀가기까지의 57일을 기록한 일기다. 특히 남한산성 내에서 있었던 비참했던 상황과 인조의 굴욕적 항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굴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부국강병(나라가 부유해지고 강해짐)을 꿈꾸며 병법서(군사를 지휘하여 전쟁하는 방법을 적은 책)를 만들고 화약 무기 등을 개발하기도 했다. 관람료 무료. 문의 02-709-3081

 

▶김보민 기자 gomin@donga.com·이지현 인턴기자

도움말=강정인 전쟁기념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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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8 23:11:4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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