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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문화재로 보는 우리나라 스포츠의 역사
자전거에 설움 담겼네



엄복동 선수의 자전거. 문화재청 제공

‘피겨의 여왕’ 김연아가 2010년 캐나다 밴쿠버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부문에서 금메달을 딸 당시에 신었던 스케이트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근 문화재청이 “만들어진 지 50년이 지나지 않은 물건이나 건축물도 문화재로 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올해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김연아의 스케이트를 사례로 든 것이다. 지금까지는 만들어지거나 사용된 지 50년이 지나야만 등록문화재가 될 수 있었다.

 

등록문화재란 불국사나 석굴암 같은 지정문화재가 아닌 근대문화유산 가운데 역사·문화·예술 등 분야에서 기념이 되거나 가치가 있는 것을 정해 관리하는 문화재.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등록된 등록문화재는 681건에 이른다.

 

등록문화재 중 김연아의 스케이트처럼 우리나라 스포츠의 생생한 역사를 전하는 문화재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 김보민 기자 gomin@donga.com

 

 

자전거로 일제에 맞서다

 

손기정 선수의 메달

‘만장의 갈채 리에 엄복동 군이 제 1착이 되어 영광스러운 우승기는 엄 군의 손에 떨어졌는데. 대판(오사카)에서까지 멀리 승리를 기약하고 온 일본인 선수들은 그만 낙담실망이 되었고….’(1922년 5월 23일자 동아일보 기사)

 

95년 전 신문기사 속 주인공은 바로 조선의 자전거 영웅 엄복동(1892∼1951). 그는 일제강점기에 가장 유명했던 자전거 선수였다. 기사에서처럼 그는 자전거 대회에서 일본인 선수를 제치고 1등을 여러 번 차지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승리의 함성을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이던 당시는 거의 불가능한 일. 일본의 억압을 받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엄복동의 승리에서 짜릿한 통쾌함과 해방감을 느끼며 독립 의지도 다질 수 있었다.

 

“이겨라 이겨라 엄복동 선수 이겨라 와 이겼다 일본인들” 당시 최고로 유행이었던 경기민요 ‘청춘가’의 가사를 바꿔서 부른 이 노래를 사람들은 돌려 부르면서 일제의 억압에 시달려 온 울분과 한을 풀어냈다.

 

엄복동은 민족의 희망이 되었다는 이유로 당시 일본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했다. 1920년 5월 2일 경복궁에서 열린 자전거 대회는 선수들이 운동장을 40바퀴나 도는 경기였다. 30바퀴를 넘었을 때 이미 엄복동은 일본인 선수를 멀찌감치 앞서나가고 있었다. 이때 별안간 일본인 심판이 “해가 졌다”면서 경기를 중단시켰다. 엄복동이 격렬하게 항의하자 일본인들이 달려들어 엄복동을 집단 폭행했다.

 

이렇듯 엄복동이 타던 자전거에는 식민지 시절의 서러움이 오롯이 담겨있다. 그 상징적 가치를 인정받아 그의 자전거는 2010년 등록문화재 466호로 등록됐다.

 

 

일장기 달고 마라톤을

 

이원순 독립운동가의 유물

손기정(1912∼2002)은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최초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인물.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해 우승한 그는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를 가슴에 단 채 뛰어야 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의 지배 아래에 있었기 때문. 손기정 선수가 받은 금메달과 우승상장, 월계관은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유물’이란 이름으로 등록문화재 제489호에 올랐다.

 

이밖에도 일제강점기에서 우리나라가 해방된 뒤 1947년 6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참가한 독립운동가 이원순의 당시 여행증명서와 대표단 단복도 등록문화재에 이름을 올렸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1948년 8월 15일)되기 전에 열린 이 총회에서 이원순을 비롯한 우리나라 대표단은 우리나라가 IOC의 회원국임을 정식으로 승인 받는 데 성공한 것. 이로써 1948년 1월 스위스 생모리츠 겨울올림픽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참가한 올림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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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1 22:53:2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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