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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동아 취재팀
  • 2016-12-21 22:4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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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보물찾기]명성황후 얼굴 비밀 풀릴까

2주에 한 번씩 ‘한국사 보물찾기’가 연재됩니다. 국보, 보물, 사적과 같은 우리 문화재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알기 쉽게 풀이 해주는 코너입니다. 우리 문화재도 배우고 한국사 상식을 쑥쑥 높여 보아요.

 

 

조선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첫 황제인 고종(1852∼1919). 고종의 사진과 초상화는 많이 전해지지만 우리는 고종의 부인인 명성황후(1851∼1895)의 얼굴은 명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명성황후는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꺼렸기에 생전에 사진이나 초상화를 남기지 않았지요. 최근 명성황후의 얼굴을 짐작해볼 수 있는 자료가 공개되었습니다.

 

미국인 선교사이자 영어교사였던 호머 헐버트(1863∼1949)는 1897년 열린 명성황후의 장례식에 관한 글을 미국의 지역신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싣습니다. 당시 헐버트의 글과 함께 명성황후를 그린 삽화가 실렸는데, 이것이 최근 열린 ‘헐버트 내한(한국에 옴) 13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공개됐어요. 그림을 공개한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은 “이 삽화가 명성황후의 실제 얼굴에 대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밝혔지요.

 

명성황후는 어떤 인물이기에 사진이 남아있지 않은 걸까요? 명성황후의 이야기와 그와 고종이 묻힌 무덤 홍릉(사적 제207호) 이야기로 떠나봅시다.

 

 

흥선대원군과 티격태격

 

 

일러스트 임성훈

명성황후 민 씨는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기억력이 매우 뛰어났다고 합니다. 어려운 글도 두세 번 읽으면 줄줄 외웠으며, 특히 역사와 정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15세가 되던 해, 명성황후는 고종과 혼인을 합니다.

 

명성황후의 결혼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은 고종의 첫째 아들을 낳은 궁인 이 씨를 명성황후보다 더 아꼈지요. 고종 역시 결혼 초기에는 이 씨에게 더 마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권력을 두고 고종과 흥선대원군이 갈등을 겪으면서 고종과 명성황후의 사이는 가까워졌습니다.

 

흥선대원군은 11세 어린 나이에 왕이 된 고종 대신 나라를 다스려왔습니다. 고종이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흥선대원군의 섭정(임금 대신 나라를 다스림)은 계속되었고, 고종의 불만이 커진 것이지요. 1873년 마침내 흥선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이 직접 정치를 하게 됩니다.

 

흥선대원군은 자신이 쫓겨난 것에 명성황후가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하고 명성황후를 미워해요. 고종은 우유부단한 성격인 반면에 명성황후는 똑 부러지는 성격이었거든요. 명성황후도 흥선대원군을 미워한 건 마찬가지였어요. 명성황후의 오빠인 민승호가 폭탄 테러로 숨지자, 명성황후는 이를 흥선대원군이 벌인 일이라 생각했으니까요.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은 정치적 입장도 달랐어요. 흥선대원군은 ‘외래 문물을 받아들이지 말고 기존의 질서를 지키자’는 입장인 반면, 명성황후는 ‘외래 문물을 받아들여 나라를 부자로 만들겠다’는 생각이었지요. 흥선대원군이 물러난 후에는 자신의 친척들을 주요 관직에 앉히고, 일본 러시아 등과 교류를 늘리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을미사변으로 세상 떠나

 

명성황후는 죽을 고비를 한 번 넘깁니다. 1882년 구식군대가 일으킨 반란인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때 다른 사람으로 변장해 궁궐을 빠져나가면서 살 수 있었지요. 임오군란 이후 그는 지극히 가까운 사람하고만 만났으며, 자신의 얼굴을 담은 사진이나 초상화를 남기지 않았다고 전해지지요.

 

하지만 명성황후는 1895년 일본군에게 목숨을 잃고 맙니다. 이 사건을 ‘을미사변’이라고 하지요. 을미사변은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려는 목적으로 명성황후를 없애려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명성황후는 러시아를 가까이 하면서 한반도에서 일본을 몰아내려 했거든요.

 

고종은 일본의 압력으로 명성황후의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했습니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으로 나라 이름을 고치고 황제가 되면서 명성황후의 국장(국가적인 장례식)을 치렀지요. 명성황후는 처음에 서울 동대문구에 묻혔다가, 1919년 고종이 세상을 떠난 후 지금의 홍릉(경기 남양주시)에 고종과 함께 묻히게 되었습니다.

 

▶ 김보민 기자 gomin@donga.com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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