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뉴스
  •  우리나라를 빛낸 스포츠영웅은?
  • 어린이동아 취재팀
  • 2016-10-24 22:59:06
  • 인쇄프린트
  • 글자 크기 키우기
  • 글자 크기 줄이기
  • 공유하기 공유하기
  • URL복사

나라 빼앗긴 아픔, 메달에 녹여내요

우리나라를 빛낸 스포츠영웅은?

 

‘피겨 여왕’ 김연아(26)가 ‘2016년 스포츠영웅’에 선정되면서 우리나라를 빛낸 역대 스포츠영웅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고난을 극복하고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고 우리나라의 명예를 드높인 체육인을 국가적인 자산으로 예우(예의를 지켜 정중하게 대우함)하기 위해 2011년부터 ‘스포츠영웅’을 선정하고 있다.

 

김연아는 2010년 캐나다 밴쿠버 겨울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고 2014년 러시아 소치 겨울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건 인물.

 

스포츠를 통해 우리나라를 세계에 널리 알린 체육인은 또 누가 있을까.

 

 

금메달을 조국의 품에

 

1936년 독일 베를린올림픽 시상식 사진에서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동아일보 1936년 8월 25일자

1936년 독일 베를린올림픽 남자 마라톤 경기.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선수는 체격은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동양인 청년이었다. ‘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마라톤에서 당시 동양인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매우 드문 일. 그러나 1등을 한 그는 기뻐하는 기색 없이 고개를 숙이고 퇴장했다.

 

이 청년은 바로 ‘2011년 스포츠영웅’으로 뽑힌 체육인 손기정(1912∼2002).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남자 마라톤에서 우승했다.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인물.

 

손기정이 금메달을 따고도 기뻐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의 가슴에 붙어있던 일장기(일본의 국기) 때문이었다.

 

베를린올림픽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의 강제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에 손기정도 일장기를 가슴에 단 ‘일본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해야만 했던 것. 시상식에서 손기정이 시상대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자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가 연주됐다. 손기정은 손에 들고 있던 월계수 나무로 유니폼에 붙은 일장기를 가렸다. 42.195㎞를 죽을힘을 다해 뛰었지만 그 영광을 조국에 바치지 못한 비통함 때문이었으리라.

 

손기정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뉴스는 신문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보도됐다. 당시 동아일보는 손기정의 유니폼에서 일장기를 완전히 지운 채 신문에 내보냈다. 조선총독부는 동아일보의 보도를 꼬투리 잡아 징계를 내렸고, 동아일보는 무기한 정간(발행을 쉼)됐다. 손기정은 나무로 일장기를 가렸다는 이유로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 점령하는 동안 경기에 나설 수 없었다.

 

우리나라 해방 후 손기정은 마라톤 코치로 활약하다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육상경기연맹 부회장 등을 거쳤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성화 봉송자로 달리기도 했다.

 

 

될 때까지 들어올린 역기

 

1948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김성집

우리나라 선수들이 일장기가 아닌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나선 첫 올림픽은 1948년 영국 런던올림픽이다. 우리나라 국적으로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가 처음 메달을 따낸 것도 이 대회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첫 메달리스트는 올해 세상을 떠난 체육인 김성집(1919∼2016).

 

일제 강점기이던 1936년 초 조선 역기 예선대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가 일본 도쿄로 가서 일본 선수들과 최종예선을 치른 뒤 거기에서 우승하면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나갈 수 있었다. 당시 18세밖에 되지 않았던 김성집은 조선 역기 예선대회에서 우승하고 일본예선에 도전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역도계는 ‘김성집은 아직 만 18세가 되지 않아 일본예선에 나설 수 없다’고 트집을 잡으면서 그의 출전 기회를 빼앗았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역기를 들어 올렸지만 또 다른 난관에 부딪혔다. 1940년과 1944년 올림픽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된 것. 그럼에도 그는 역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1945년 8월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았고, 김성집은 1948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해 값진 동메달을 따냈다. ‘코리아(KOREA)’의 첫 메달이었다. 그는 연이어 1952년 핀란드 헬싱키올림픽에도 출전해 동메달을 또 따냈다. 그는 그야말로 ‘집념’의 체육인이었던 것이다.

 

▶서정원 기자 monica89@donga.com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어린이동아에 있습니다.

< 저작권자 ⓒ 어린이동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권지단
  • 댓글쓰기
  • 로그인
    • 어동1
    • 어동2
    • 어동3
    • 어동4
    • 어솜1
    • 어솜2
    • 어솜3

※ 상업적인 댓글 및 도배성 댓글, 욕설이나 비방하는 댓글을 올릴 경우 임의 삭제 조치됩니다.

더보기

NIE 예시 답안
시사원정대
  • 단행본 배너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