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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 돋보기]개척자 vs 파괴자 콜롬버스의 두 얼굴
  • 어린이동아 취재팀
  • 2016-10-20 22: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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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서 ‘콜롬버스의 날’ 폐지 움직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콜럼버스 동상. 타임
 
 

미국에서 “‘콜럼버스의 날’을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의 공휴일인 콜럼버스의 날은 매년 10월 두 번째 월요일이다. 1492년 10월 이탈리아 탐험가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가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콜럼버스의 날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가 열린 모습. USA투데이
 
 

그런데 콜럼버스의 날을 폐지한 미국 도시가 지난해 27개에서 올해 43개로 늘었으며, 올해 콜럼버스의 날(10일) 행사가 열리는 장소 곳곳에서

“콜럼버스의 날 폐지”를 주장하는 시위가 거세게 일었다. 콜럼버스의 항해를 아낌없이 지원했던 스페인(옛날 에스파냐 왕국)에서도 바르셀로나의 상징인 콜럼버스 동상을 철거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왜 콜럼버스의 흔적을 지우려 할까? 콜럼버스는 어떤 인물일까?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착각

 

콜럼버스는 서구에서 ‘불굴의 의지’를 가진 위대한 인물로 평가된다. 수많은 어려움에도 미지의 세계로 과감히 항해를 떠난 탐험가이기 때문.

 

이탈리아 항구도시 제노바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라비아, 인도에서 건너온 향신료 등 진귀한 물건을 자주 접했다. 당시 이 물건들은 육로나 아프리카를 빙 둘러 인도로 이어지는 항로를 통해서만 유럽에 전해졌다.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는 가까운 항로를 개발해 동양을 마음껏 탐험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탐험에 필요한 돈이 없었던 그는 1484년 포르투갈의 왕을 찾아가 “탐험할 돈을 지원해 달라”고 청했지만 바로 거절당했다. 그 후 에스파냐, 영국, 프랑스 등지를 8년 동안 떠돌며 후원자를 열심히 찾았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 이런 노력 끝에 마침내 에스파냐의 왕비인 이사벨 1세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게 됐다.

 

1492년 8월 콜럼버스는 탐험을 떠났다. 항해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지친 선원들은 “에스파냐로 돌아가자”며 심각한 폭동을 일으켰다. 콜럼버스 자신도 구름을 육지로 착각할 정도로 힘들어했다.

 

선원들을 설득하고 자신을 다스리며 항해를 계속했고 그해 10월 오늘날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 오늘날 서인도 제도의 섬들과 히스파니올라(오늘날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 등을 탐험했다. 그는 이곳을 ‘인도’라고 착각했다.

 

얼떨결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해 유럽에 알린 후부터 유럽 국가들은 콜럼버스의 항로를 따라 아메리카에 진출할 수 있었다.

 

콜럼버스가 탐험을 떠나는 모습을 나타낸 그림. 동아일보 자료사진
 
 

금! 금!

 

하지만 긍정적인 평가는 여기까지. “콜럼버스를 찬양하는 목소리를 멈춰야 한다”는 의견이 거세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을 산산조각 냈기 때문.

 

에스파냐로 귀환했다가 1493년 다시 아메리카로 돌아온 콜럼버스는 히스파니올라를 식민지로 만드는 데 혈안이 됐다. 이곳에 있는 금을 캐서 에스파냐로 가져가 팔기 위해서였다.

 

그는 원주민을 협박해 금을 캐오라고 시켰고 금을 가져오지 못한 원주민은 처참하게 죽였다. 금이 금방 동 나자 그는 수많은 원주민을 노예로 유럽에 팔아 돈을 벌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던 원주민들은 콜럼버스 일행에 반발했고, 콜럼버스는 수많은 원주민을 동물 사냥하듯 잡아서 학살했다. 그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처음 만났던 타이노족의 인구 수는 1492년 800만 명에서 1496년에는 10만 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진다.

 

콜럼버스는 1500년 이후 아메리카 땅을 밟지 않았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고통은 이어졌다. 뒤이어 아메리카에 도착한 유럽 국가들이 400년 동안 콜럼버스의 행동을 따라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리고 짓밟았던 것.

 

게다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옮겨온 천연두, 장티푸스 등 각종 질병에 수많은 원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유럽인들과 달리 원주민들은 처음 접하는 이 질병들에 전혀 면역력(병원균에 저항하는 힘)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

 

이 때문에 사람들은 “‘파괴자’인 콜럼버스 보다는 평화롭게 살았던 원주민들과 그들의 문화를 기억해야 한다”며 콜럼버스의 날을 ‘원주민의 날’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채린 기자 rini1113@donga.com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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