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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년 동안 한반도를 휩쓸다
  • 어린이동아 취재팀
  • 2016-06-22 22:4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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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6·25전쟁

3년 동안 한반도를 휩쓸다

《 25일은 66년 전 6·25 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우리나라를 침범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953년 7월 27일 휴전(전쟁을 멈추는 일)이 이뤄지기까지 3년 동안 계속됐다. 최근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6·25 전쟁 및 호국보훈과 관련된 사진, 동영상 등의 기록물을 홈페이지(www.arhcives.go.kr)에 공개했다. 사진을 통해 6·25 전쟁의 과정을 생생하게 살펴보자. 》

 

 

낙동강을 지켜라

 

 

흥남을 떠나는 미군

38선을 넘어온 북한군은 1950년 6월 28일 서울을 함락시킨다. 중부지방과 호남(전라도)지방도 북한군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8월 북한군은 대구 근처까지 내려왔다.

 

이때 국군은 낙동강을 최전선(적과 맞서는 맨 앞의 전선)으로 두고 낙동강 남쪽 지역을 지키려고 했다. 이곳에서 수차례 벌어진 치열한 전투에서 국군과 미군이 승리를 거뒀다.

 

낙동강을 둘러싼 전투에서 거둔 승리는 하루빨리 우리나라를 점령해 전쟁을 끝내려고 병력을 집중시켰던 북한군을 약하게 만들었다. 이는 이후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는 밑거름이 된다.

 

1950년 9월 15일 미국의 맥아더 장군은 북한군의 병력이 낙동강에 집중된 상황을 틈타 인천에 유엔군 7만 명을 내리게 했다. 이것이 바로 ‘인천상륙작전’이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유엔군과 국군은 9월 28일 서울을 되찾았고, 북쪽으로 진격했다. 10월 19일에는 평양을 점령한다. 평양으로 들어온 국군을 환영하는 행사가 열렸다. 유엔군과 국군은 북쪽으로 계속해서 올라가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갔다.

 

 

남쪽으로 철수하라

 

 

한강을 건너는 피난민들

북한군의 전력이 매우 약하진 상태에서 중공군(중국군)이 11월 한반도로 들어와 북한을 지원하면서 전쟁에 참가한다. 북한군과 중공군의 강력한 반격에 우리 군은 38선(북위 38도선)의 북쪽에 있는 병력을 모두 철수하기로 결정한다. 1950년 12월 4일 평양에서 국군이 철수하고, 12월 14일부터 24일 사이 국군 10만여 명과 피난민 10만여 명이 함경남도의 흥남부두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철수한다. 이것이 바로 ‘흥남철수’다. 영화 ‘국제시장’(2014)에 흥남철수를 그린 장면이 나온다.

 

이듬해인 1951년 1월 4일 중공군과 북한군은 서울을 다시 점령한다. 이 사건이 ‘1·4후퇴’다. 이후 3월에 서울을 다시 찾게 된다. 이후 오늘날의 휴전선을 경계로 전선이 고정되었다.

 

 

피난민들로 붐볐던 부산

 

인천의 피난민들이 부산에 도착한 모습

전쟁이 일어나자 수많은 사람들이 한강 다리를 건너고, 산을 넘어 남쪽으로 피난(재난을 피함)했다. 특히 많은 이들이 몰린 곳이 부산. 전쟁 직전 40만 명이던 부산 인구가 전쟁 중에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대한민국 정부 또한 서울에서 부산으로 옮기고 부산을 ‘임시수도’로 지정했다. 부산은 1950년 8월 18일부터 10월 27일까지, 1951년 1월 4일부터 휴전 때까지 대한민국 정부의 임시수도로 기능했다. 정부청사가 부산에 마련되고 대통령도 부산에 머무른 것.

 

▶김보민 기자 gomin@donga.com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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