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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높이 사설] [눈높이 사설]‘현대차 스승’ 미쓰비시차의 몰락
  • 어린이동아 취재팀
  • 2016-05-22 21: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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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이치 현 오카자키 시 미쓰비시차 조립 공장 내부 모습. 동아일보 자료사진
 
 

현대자동차가 1976년 1월 내놓은 포니는 한국의 첫 고유 자동차 모델로 꼽힌다. 하지만 포니에 탑재된 엔진은 기술제휴(기업과 기업이 생산 기술이나 가공 기술 따위를 서로 제공하여 협력하는 일) 파트너였던 일본 미쓰비시차의 1238cc 엔진이었다. 당시 한국은 자동차 핵심 부품인 엔진을 스스로의 힘으로 개발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1982년의 스텔라, 1985년의 엑셀 엔진도 이 회사에서 공급받았다. 기술력이 우위인 미쓰비시차가 주도권을 잡았고 현대차는 한껏 자세를 낮추고 머리를 숙이는 관계였다.

 

미쓰비시차는 1917년 미쓰비시중공업의 사업부로 출발한 뒤 1970년 별도 법인으로 독립했다. 일본 최초의 시리즈 자동차인 ‘Model A’를 선보이면서 일본 자동차산업에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점차 혁신에 실패해 사세(회사의 기세)가 기울었다. 현대·기아차가 세계 자동차업계 5위로 뛰어오른 반면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스승’ 미쓰비시차는 16위로 밀려났다. 차 생산대수는 현대·기아차의 8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메이지 유신 2년 뒤인 1870년 이와사키 야타로가 설립한 미쓰비시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싸움에 짐)까지 미쓰이(미쓰이은행과 미쓰이물산 등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그룹)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양대 기업이었다. 두 회사의 기업 문화는 ‘조직의 미쓰비시, 인간의 미쓰이’로 불렸다. 종전(전쟁이 끝남) 후 맥아더 장군의 연합군 사령부는 일본의 침략전쟁 과정에서 군부와 손잡은 ‘재벌 체제’를 해체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예전의 계열사들이 다시 뭉치는 그룹 체제로 변했다.

 

25년 동안이나 자동차 연료소비효율(자동차가 주행 거리당 소비하는 연료의 양)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큰 파문을 일으킨 미쓰비시차는 생존에 실패하고 일본의 또다른 자동차회사 닛산에 인수(물건이나 권리를 건네받음)됐다. 미쓰비시그룹 계열사 사장단 모임인 ‘금요회’는 2000년 미쓰비시차가 리콜(회사 측이 제품의 결함을 발견하여 보상해 주는 제도) 은폐 사건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 ‘미쓰비시 브랜드를 지키자’며 지원했지만 이번에는 손을 들었다.

 

연비 조작이란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회사를 위하는 일’이라는 폐쇄적 집단사고에 갇혀 잘못을 바로잡지 않은 미쓰비시차는 폴크스바겐처럼 소비자를 속이다가 몰락했다.

 

동아일보 5월 13일 자 권순활 논설위원 칼럼 정리

 

 

※ 상식UP

 

메이지 유신: 19세기 후반 일본의 메이지 천왕 때 왕을 중심으로 국가를 통일하고 서양식 문물을 받아들여 발전을 꾀한 개혁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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