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이 모두 B형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신도 B형인 줄 알고 산 20대 여성이 ‘Cis(시스)-AB형’인 것으로 국내에서 확인돼 학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cis’란 프랑스어로 ‘한쪽에 있다’는 뜻. Cis-AB형은 A 유전자와 B 유전자가 분리되지 않고 통째로 결합된 혈액형이다.

 

유전적으로 볼 때 B형인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는 B형이나 O형의 자녀가 태어난다. 그런데 이 여성은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Cis-AB형이 된 것. 국내 첫 사례다.

 

조덕 삼성서울병원 진담검사의학과 교수와 신희봉 순천향대 부천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가 함께 연구한 이 내용이 국제 학술지인 ‘수혈 의학(Transfusion Medicine)’ 최신호에 실렸다.

도대체 혈액형이 유전적으로 어떻게 결정되기에 이번 사례가 학계를 놀라게 한 걸까?

 

 

영양소 나르는 혈액

 

혈액형이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법칙을 알려면 우선 ‘혈액’에 대해 알아야 한다.

 

혈액은 혈관을 돌며 각 신체기관에 필요한 물질을 나른다. 뼛속 중심에 있는 부드러운 조직을 ‘골수’라고 하는데 여기서 혈액 세포가 만들어진다.

 

혈액은 다시 ‘혈장’과 ‘혈구’로 나뉜다. 혈장은 투명한 액체로 혈액량의 약 55%를 차지한다. 음식에서 얻은 영양소를 나르고 몸속 구석구석에 쌓인 노폐물과 이산화탄소를 몸 밖으로 내보낸다.

 

혈장을 둥둥 떠다니는 것이 혈구. 혈구는 다시 ‘적혈구’와 ‘백혈구’, ‘혈소판’으로 나뉜다. 적혈구는 산소를 운반한다. 붉고 양면이 오목하게 생긴 적혈구는 전체 혈구량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백혈구는 항체(바이러스나 병균을 물리치는 물질)를 만들고, 혈소판은 몸 밖으로 흐르는 피를 멎게 한다.

 

 

유전자에 따른 혈액형

 

혈액형을 결정짓는 건 적혈구에 붙은 ‘당사슬’(탄수화물의 일종)의 구조. 당사슬에 항원(외부물질에 반응하는 몸속 물질)이 없는 것을 ‘O형’, A 항원이 달린 것을 ‘A형’, B 항원이 달린 것을 ‘B형’, A 항원과 B 항원이 둘 다 달린 것을 ‘AB형’이라고 한다.

 

당사슬에 항원이 있고 없고, 있다면 어느 항원이 달리느냐를 정하는 건 유전자다. 유전자란 부모에서 자녀로 전해지는 특징(형질)에 관한 정보가 담긴 물질. 항원에 관여하는 유전자에는 ‘A 유전자’, ‘B 유전자’, ‘O 유전자’가 있다. A 유전자와 B 유전자는 O 유전자보다 ‘우성(더 강한 유전자)’이다. 아빠와 엄마로부터 각각 하나씩 물려받은 유전자가 무엇이냐에 따라 항원이 달라진다.

 

부모 모두에게서 A 유전자를 물려받는다면 적혈구의 당사슬에 A 항원이 달려 A형이 된다. 만약 부모 중 한 사람에게서 A 유전자, 다른 한 사람에게서 O 유전자를 물려받을 때도 당사슬에 A 항원이 달려 혈액형은 A형이 된다. A 유전자가 O 유전자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다.

 

 

돌연변이 유전자

 

Cis-AB형으로 밝혀진 20대 여성의 부모는 둘 다 B형이다.

 

B형에는 유전적으로 B 유전자 두 개가 결합된 형태, B 유전자와 O 유전자가 결합된 형태가 있다. B형 부모 사이에서 나올 수 있는 자녀의 혈액형은 B형(B 유전자+B 유전자 또는 B 유전자+O 유전자)과 O형(O 유전자+O 유전자)뿐.

 

Cis-AB형은 A 유전자와 B 유전자가 분리되지 않고 통째로 유전되는 형태로 적어도 부모 중 한 명이 Cis-AB형이어야 자녀도 Cis-AB형일 수 있다. 결국 이 여성의 혈액형은 유전적으로 정해진 게 아니라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킨 결과다. 기존의 유전법칙을 깨는 사례이므로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공혜림 기자 hlgong37@donga.com

도움말= 권석운 대한수혈학회 이사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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