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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리더]미얀마 ‘민주화의 꽃’ 아웅산 수치
  • 어린이동아 취재팀
  • 2012-04-13 03: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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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

 

1일 미얀마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1962년 군대가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은 후 세 번째로 열린 보궐선거에서 ‘아웅산 수치(사진)’ 여사가 당당히 당선된 것. 수치 여사는 1990년 선거에서 이기고도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가 22년 만에 복귀했다. 수치 여사는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미얀마가 새로운 시대로 가는 출발을 의미하며 국민이 승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 199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국민에게 압도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는 수치 여사. 그의 당선은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군인들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독재 치하에 살았던 미얀마에서 민주화와 평화를 외쳤던 수치 여사의 당선은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떤 리더이기에 전 국민의 지지를 받았을까. 그의 삶을 들여다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평범한 주부에서 민주화 투사로

 

수치 여사는 미얀마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2살 때 아버지가 암살되는 슬픔을 겼었다. 인도 대사로 임명된 어머니를 따라 15세 때 미얀마를 떠난 뒤 수치 여사는 줄곧 인도와 영국, 미국에 머물렀다.

1964년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대에 진학해 철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아시아학을 전공한 영국인 마이클 에어리스와 결혼했다. 40대 중반까지 학자로서, 주부로서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편안하게 살아가던 삶은 예기치 않은 운명으로 한순간 바뀐다.

1988년 8월 8일 오전 8시. 미얀마에서 큰 움직임이 일어났다. ‘더 이상 군사 독재정권 아래에서 살 수 없다’면서 시민들이 항쟁한 것. 수치 여사는 그해 4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미얀마에 귀국해 있었다. 국민들은 군사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펼쳐나갔고 수치 여사가 함께 해주기를 원했다. 수치 여사는 국민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다.

군부 정권이 28년 동안 독재하고 있던 미얀마는 가난과 위협 속에 떨고 있었다. 경제는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민주 정부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군인들은 이 나라의 명예를 지키고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군대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는 평화적으로 우리의 뜻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합니다.”

그는 같은 해 8월 26일 수도 양곤에서 수십만 시민 앞에서 민주화를 외쳤다. 평범한 주부로 살 수 있었지만 미얀마의 민주화를 선택한 것이다.

 

●조국을 위해 흔들리지 않은 신념

 

1990년에 치러진 총선에서 수치 여사가 이끄는 당은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군사정권은 권력을 돌려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치 여사가 20여 년 동안 집 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다. 남편 마이클의 귀국도 허락하지 않았다. 수치 여사가 미얀마를 떠나도록 하기 위해 출국을 하라고 했으나 수치 여사는 조국을 떠나지 않았다.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수치 여사는 참석하지 못하고 남편이 대신 수상했다.

1995년 미얀마 군사정권은 남편 마이클 아리스와 두 아이들에게 수치 여사를 만날 수 있도록 비자를 발급했다. 혹시나 수치 여사를 설득하여 영국으로 데려가면 정치적 골칫덩어리가 해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치는 어린 자식들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이 미얀마를 선택했다.

수치 여사가 미얀마의 집에 갇혀 있는 동안 남편 마이클이 암을 앓기 시작했다. 남편이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수치 여사는 미얀마를 떠나지 않았다. 한번 영국으로 돌아가면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1999년에 사망했고, 두 아이들은 엄마 없이 자랐다. 수치 여사의 희생을 바탕으로 미얀마의 민주주의 희망은 조금씩 자랐다.

 

●부드러움 속의 카리스마

 

수치 여사는 미얀마 국민의 영웅이었던 아버지의 후광을 입었지만 자신만의 정치적 자질을 발휘했다. 언제나 미얀마 전통 의상을 입고 군중 앞에 나섰다. 부드러운 미소 속에 직설적으로 말하는 스타일 또한 수치 여사의 힘이다.

 

▶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 미얀마의 리더, 아웅산 수치의 힘 ::

 

조국을 향한 사랑

 

수치 여사는 언제나 자신이 미얀마 국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어요. 고국을 떠나 인도, 영국에서 생활할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때문에 국민이 수치 여사를 원할 때 고국을 위해 민주화 운동에 나설 수 있었어요.

 

평화를 사랑하는 정신

 

그녀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 정부에 의해 20여 년 동안 집에 갇혀있었어요. 하지만 크게 저항하지 않았어요.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평화롭게 해결되기를 기다렸지요. 평화를 사랑하는 정신, 인내할 줄 아는 힘을 세계에 알렸어요.

 

국민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

 

조국을 떠나 살다가 미얀마에 돌아왔을 때 수치 여사는 마음이 정말 아팠다고 해요. 미얀마는 당시 가난과 군사 정부의 위협으로 고통 받고 있었죠. 그녀는 고통 받는 국민에게 자유와 평화를 주기 위해 개인적인 삶을 희생했답니다.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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