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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Books]‘우표’, 종이딱지? 모르시는 말씀 ‘역사 문화’ 가득!
  • 어린이동아 취재팀
  • 2011-06-29 04: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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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가 담긴 8가지 우표이야기 / 어린이작가정신 펴냄

왼쪽부터 화폐단위가 문(文)으로 표시된 문위(文位) 보통우표 2장(1884년), 이준 열사 보통우표(1947년), 유엔군 6·25전쟁 참전 기념우표(1951년).
우리 정부가 1954년, 2002년, 2004년에 발행한 독도 우표.(왼쪽부터)

편지보다 e메일을 더 선호하는 세상이 됐지만 여전히 손으로 보내는 편지는 정감 있다. 정성껏 쓴 편지 봉투에 우표를 딱 붙이는 순간 벌써 내 마음이 받는 사람에게 가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온다.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과는 분명히 무언가가 다르다.
올여름, 우리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것이다. 그런데 내가 붙이는 이 우표는 언제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이 종이 딱지는 무엇이냐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봉화대. 맞다. 옛날에는 중요한 문서는 사람이 직접 전달하고 전쟁이나 화급한 일은 횃불을 밝혔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 고종황제는 일본의 개화문명을 배워오라고 신하에게 지시한다.
일본을 방문한 홍영식은 국내는 물론 이고 외국의 소식까지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딱지’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게다가 나랏일은 물론이요 개인 일까지 처리할 수 있고, 우표를 판 돈은 나라의 재산이 된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홍영식이 귀국한 뒤 태극문양을 한 최초의 우표가 등장했고, 오늘날의 우체국 역할을 했던 우정국이 조선에 세워졌다.

 

●근현대사 생생


1905년 일본과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우리나라는 외교권을 박탈당했다. 자주독립국의 지위를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 고종황제는 1907년 이준 이상설 이위종 세 사람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참석시켜 을사조약 무효를 알리게 했다.
1945년 광복 후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찍어낸 독립운동가 우표에는 이준 열사의 모습이 생생하다.
1950년 6월 6·25전쟁이 터져 남북한은 치열한 교전을 펼쳤다. 전쟁이 일어났다고 우체국이 문을 닫지 않는다. 가장 바쁜 곳이 우체국. 가족 친구 친척 연인의 생사를 알려주는 유일한 창구가 우체국이었던 것. 6·25전쟁에 참여한 유엔군에게도 마찬가지.
정부는 1950년에서 1952년까지 유엔의 도움에 감사하기 위해 ‘유엔군 6·25사변 참가 기념우표’를 3번에 걸쳐 제작했다.

 

●독도는 우리 땅


“독도 우표가 붙은 우편물은 일본 안에 배달하지 않고 반송하겠소!”
1954년 일본 정부는 대한민국의 독도 우표가 붙은 우편물을 배달하지 않겠다고 강력 반발했다.
“일본이 독도 우표가 붙은 우편물을 반송하는 것은 만국우편조약에 위배되는 일이다.”
우리 정부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주장을 결코 굽히지 않았고, 독도의 자연을 담은 우표를 2002년, 2004년에도 발행했다.
우표에 얽힌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9500원.

 

 

< 허운주 기자 apple297@donga.com >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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