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지연이가 전학 간대요.”
“왜? 내신 성적이 안 좋아서?”
“아니요. 이렇게 공부만 하는 분위기가 싫대요.” “애들이 술렁거리겠다.”
“맞아요. 지연이가 전학 간다니까 나도 마음이 싱숭생숭했어요.”
“그런데 외국어고에 다니다가 일반고에 가면 적응을 잘할까?”
“지연이는 잘할 거예요. 성격이 매우 좋거든요.”
“너는 , 혹시 전학 갈 생각이 있니?”
“그냥 우리 학교에 있을래요. 공부에 스트레스 받지만 분위기는 좋아요.”
학교에 갔다 온 딸이 오늘 전학 가는 친구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 외고에 들어간 아이를 둔 부모의 가장 큰 걱정은 내신입니다. 딸은 지난번 모의고사 때 영어에서 실수로 하나 틀렸는데 전교 등수가 100등이나 떨어졌습니다. 영어 모의고사를 다 맞은 학생이 전교생 200명 중에서 100명이라는 뜻입니다. 영어 성적을 보고 어깨가 축 처져 있는 딸아이를 보면서 왠지 마음이 아팠습니다.
외고에 들어간 직후 딸은 절대로 성적표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때 자랑스럽게 보여주던 성적표가 어느덧 딸아이의 가슴에는 짐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해도 올라가는 성적은 아주 조금이지만 조금만 공부를 느슨하게 하거나 실수하면 내려가는 등수는 무지막지하기 때문입니다. 성적에는 나름대로 자신을 가졌던 아이가 스스로를 평가절하하는 것을 보며 외고가 무서운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여러 번입니다.
얼마 전 딸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시킨 친구를 만났습니다. 대학에 어떻게 들어간 것인지 묻는 과정에서 자신이 잘 한 일 중의 하나가 아이를 외고에 넣지 않은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내신을 확실하게 잡았기 때문에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죠. 그 친구를 보면서 내가 딸의 진로를 잘못 결정한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외고에 대한 잘못된 생각 중 하나가 외고에 들어가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외고는 내신이 불리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대학 입학 실적이 저조할 수도 있습니다. 내신을 관리할 생각이라면 외고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불리합니다. 학생들의 수준이 비슷비슷해 조금만 실수해도 내신이 50에서 100등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아이가 혼자서 꾸준히 공부를 잘 하는 성격이라면 외고가 아닌 일반고에서 내신을 관리하는 것이 대학 입시에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외고의 좋은 점도 물론 많습니다. 여러 가지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학교에서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딸은 영어과인데 3년 동안 중국어를 하고 2학년 때는 프랑스어를 한다고 합니다. 중국어 3년 하고, 영어과로서 영어 열심히 3년 하고 1년 프랑스어를 배우면 언어적인 면에서는 많은 도움이 되겠지요.
또 다른 좋은 점은 모든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분위기라는 점입니다. 우리 아이의 경우 수업이 끝나면 3시간 정도 야간 자율학습을 합니다. 아이들이 가끔 떠들기도 하고 잠도 자지만 일단 시험 때가 되면 온 교실이 도서실이 된다고 합니다. 누가 떠들지 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열공’ 모드에 돌입하는 것이죠.
우리 아이가 중간고사를 앞두고 처음 하는 말이 “엄마, 중학교 때는 공부하려면 애들 눈치 봐야 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없어 좋아”였습니다.
원칙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외고를 명문대로 가는 지름길로 보는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다. 영어를 잘하고 어학에 소질이 있는 아이가 일반고보다 언어에 대한 비중을 많이 두는 수업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원래 목적인 만큼 자녀를 입학시킬 때 충분히 의논하고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현주 ‘난생 처음 쓰는 영어일기’ 저자·감신대 교수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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