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어학연수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난해 겨울 우리 학교 여학생 20명과 필리핀 여대생 20명이 함께 하는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3시간 거리에 위치한 타가이타가이 농장에 머물렀던 저는 영어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필리핀 여대생 모두가 영어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부 지역의 언어는 따갈로였고 일부 대학생은 영어를 전혀 못했습니다. 또 남부 지역 사람들이 영어를 말할 때 타갈로그 악센트가 강해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저도 잘 못 알아들었어요.
저는 현재 대학원에서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칩니다. 그중에서 필리핀 남부 출신의 학생이 있었는데 한번은 cousin의 발음 때문에 설왕설래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커즌’이라 발음했고 필리핀 학생은 ‘쿠신’이라 발음하며 제 발음이 틀렸다고 했습니다. 결국 사전으로 확인하며 결론을 냈지만 필리핀 사람이 모두 정확한 영어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닐라에서 타가이타가이로 가는 길에 조그만 영어학원이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그야말로 쓰러져가는 2층짜리 건물이고 그 앞에는 한국 음식점 몇 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때가 쉬는 시간이었는지 한국 학생들이 삼삼오오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죠.
한 학생이 한국 아이들이 방학동안 500만 원을 수강료로 내고 영어를 공부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500만 원은 필리핀 사람들의 평균 1년치 월급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만약 원한다면 세부 지역에 사는 자신의 사촌을 소개해주겠다고, 영어 선생님인 사촌은 그 반값에 가르쳐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필리핀에서 영어를 잘하는 지역은 미군(Camp John Hay)이 주둔했던 바기오(Baguio) 지역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미국 사람처럼 잘한다더군요. 또 관광객이 많은 세부 지역의 사람들도 영어를 잘한다다네요.
필리핀 영어는 핑글리시(Finglish)입니다. 한국은 콩글리시(Konglish), 싱가포르는 싱글리시(Singlish)죠. 핑글리시에는 타갈로그 악센트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영어를 굳이 돈을 주어 가며 배워야 할까요?
국제 학교의 외국인 선생님께 배우고 나머지 시간은 필리핀 개인교사에게 배우는 것이나 한국의 대학에서 개최하는 여름캠프에서 공부하고 한국에 있는 필리핀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나 무엇이 다를까요?
필리핀 영어를 배우는 것은 어쩌면 핑글리시를 배우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현주 ‘난생 처음 쓰는 영어일기’ 저자· 감신대 교수>

 

▨희정이가 보낸 편지

싱가포르엔 ‘싱글리시’가

 

중학교 1학년 때 가족이 싱가포르로 여행을 간 적이 있어. 엄마가 싱가포르도 영어를 쓰는 나라라고 했지. 그런데 막상 그곳에 가니 영어를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는 거야. 여행가기 전에는 엄마하고 약속했어. 간단한 회화는 내가 하겠다고. 그런데 막상 가니 알아들을 수 없어 영어를 할 수 없더라고.
한번은 동물원에 간 적이 있었어. 거기 있는 안내원에게 길을 물어보았는데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난 “Can you tell me in English?”라고 말했지. 그런데 그 사람이 “I＇m talking to you in English.”라고 하며 막 화를 내는 거야. 진짜 황당하더라. 싱가포르 영어는 엄마가 말씀하신 대로 정말 싱글리시인가봐.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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