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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리더]일제강점기 여성 독립 운동가들
  • 어린이동아 취재팀
  • 2014-08-14 16:3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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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늘(15일)은 광복절이다. 우리나라가 외세침략에서 벗어나 주권을 되찾을 수 있었던 건 당시 조국 독립을 이끌었던 수많은 독립 운동가의 희생 덕분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독립 운동가는 많지 않다. 게다가 대다수가 남성 독립 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여성 독립 운동가들이 있다. 그녀들이 과연 어떤 리더십을 발휘했는지 살펴보자.

 

조마리아 - 강한 어머니 리더십

 

조마리아 여사 (왼쪽). 동아일보 자료사진. 조 여사가 지은 수의를 입은 안중근 의사 (오른쪽)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만주 하얼빈역에서 일제치하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쏘았다. 그 자리에서 이토는 숨졌다. 안 의사는 군사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리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안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는 형무소에 있는 아들에게 수의(세상을 떠난 사람이 입는 옷)를 손수 지어 보냈다. 편지 한 통과 함께.

 

일러스트 임성훈

 

조 여사의 편지를 읽은 안 의사는 항소를 접고 1910년 3월 26일 어머니가 만든 수의를 입고 사형을 당했다. 자식에게 ‘당당히 죽음을 맞아라’고 할 수 있는 어머니가 과연 몇이나 될까? 역사가들은 “조 여사의 강한 정신력이 안중근이란 위인을 탄생시킨 것”이라고 말한다.

 

이후 조 여사는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들어가 안창호, 조상섭 등과 함께 경제후원회에서 활동하며 아들이 못다 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권기옥 - ‘내가 먼저’ 행동하는 리더십

 

독립 운동가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비행사인 권기옥은 ‘행동대장’이었다.

 

일제치하에 억울하게 숨진 사람들의 사연에 분노한 그녀는 1919년 3·1 만세운동에 앞장섰다가 옥살이를 했다. 석방된 뒤에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도와 군자금을 모으다가 또 옥살이했다. 거듭된 옥살이도 조국독립을 향한 그녀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국내 최초 여자 비행사인 권기옥. 동아일보 자료사진

1923년 권기옥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추천으로 중국 운남육군항공학교에 입학했다. 건장한 청년도 견디기 힘든 훈련이었지만, 그녀는 수석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전투 때마다 앞장서 적군을 물리쳤다. 결국 대한독립군 대령 자리까지 오른다.

 

그녀의 용맹한 리더십과 행동력은 다른 나라 청년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1935년 당시 중국 항공위원회는 비행기가 무서워 공군에 들어오지 않는 중국 청년들을 독려하기 위해 권기옥에게 비행을 부탁할 정도.

 

광복 후 1949년 귀국한 그녀는 국회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으로서 한국 공군을 창설하는 데 리더십을 발휘했다.

 

공혜림 기자 hlgong37@donga.com

 

◆ 한뼘 더

 

아직도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독립 운동가가 정말 많습니다.

 

그분들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겠지요. 광복절을 맞아 그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적어봅시다.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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