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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 실제 역사, 주전파-주화파 논쟁의 내용은?
“싸울 것인가, 굴복할 것인가”



영화 ‘남한산성’에서 인조 역할을 맡은 배우 박해일.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남한산성’(15세 관람)이 최근 개봉하면서 이 영화에 담긴 역사 사건에 관심이 쏠린다.

 

이 영화의 배경은 인조(조선 16대 왕·1595∼1649) 때 일어났던 전쟁인 병자호란(1636∼1637). 당시 청의 군대가 공격해오자 인조와 조정 신료들은 남한산성(경기 광주시)으로 몸을 피한다.

 

청군에 완전히 포위된 상황에서 신하들은 둘로 나뉜다. 청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주전파(척화파·전쟁을 주장하는 무리)’와 청의 요구를 들어주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주화파(화친파·화합을 주장하는 무리)’로 맞선 것. 이들의 논쟁은 왜 일어난 것일까? 인조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청과 형제? 청의 신하?

 

최명길 역할을 맡은 배우 이병헌
 

인조는 인조반정으로 큰아버지인 광해군을 내쫓고 왕이 됐다. 인조반정은 후금과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광해군의 중립외교에서 비롯됐다.

 

기존에 임금의 나라로 섬기던 명에 대한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하들은 1616년 여진족이 만주에서 세운 후금을 ‘오랑캐의 나라’로 여겼다. 그런데 광해군은 후금이 명을 멸망시킬 수 있을 만큼 강해졌다고 판단해 후금과 명 사이에 중립을 지켰다. 신하들은 이런 광해군의 외교가 ‘명분(마땅히 지켜야할 도리)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1623년 그를 임금 자리에서 쫓아냈다.

 

1624년 이괄이 인조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다. 이괄은 광해군을 폐위하고 인조를 왕으로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다른 신하들보다 낮은 직급을 받고 따돌림을 당하자 난을 일으켰다. 이괄이 후금으로 달아나 ‘광해군이 부당(이치에 맞지 않음)하게 폐위되었다’고 전하자 후금은 1627년 ‘광해군의 원수를 갚는다’는 이유로 조선을 침략한다. 당시 3만여 명의 후금군은 평양에 이어 황해도 황주까지 차지했다. 예상치 못한 침략에 당황한 조선은 후금과 앞으로 형제 관계를 유지할 것을 조건으로 조약을 맺은 뒤 후금군을 돌려보낸다.

 

그 후 명을 침략해 거의 멸망시킨 후금은 1636년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꾼 뒤 조선에게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맺을 것을 요구한다. 본래 명을 섬겨왔던 조선이 이를 거부하자 청은 같은 해 12월 다시 조선을 침략한다. 이것이 병자호란이다.

 

 

조선이 섬길 대상은?

 

병자호란이 일어난 뒤 청의 태종이 10여 일 만에 한양(서울)을 점령하자 인조는 조정 신료들과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한다. 남한산성을 둘러싼 청군은 20만 명에 달했지만 조선군은 2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이들은 45일 동안 청에 맞섰지만 식량이 점차 바닥나고 피로감이 높아지자 신료들 사이에서 전쟁을 끝낼 방법을 놓고 논쟁이 커졌다.

 

이 시기 조정 신료들은 명과의 의리를 지키고 청에 맞서 싸우자는 ‘주전파’와 청의 요구를 들어주고 관계를 회복하자는 ‘주화파’로 나뉘었다. 영화에서 배우 김윤석이 맡은 예조판서 김상헌(1570∼1652)은 주전파, 이병헌이 맡은 이조판서 최명길(1586∼1647)은 주화파의 핵심 인물이었다.

 

인조실록 33권과 34권에 따르면 병자호란이 일어날 동안 청군은 거의 매일같이 청과의 관계 개선에 반대하는 이들을 잡아 보내라고 요구했다. 주화파인 최명길은 이홍주 등과 함께 사신으로 오가며 청과 협상을 통해 불안정한 전쟁 상황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주전파는 최명길 일당이 나라를 팔아넘긴다고 비판하며 “청군과 싸우다 죽게 해달라”고 인조에게 청했다. 양측의 신하들이 번갈아가며 하루에도 두세 번씩 인조에게 청을 올려 인조는 명확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후금을 멀리하고 명을 섬기길 원했던 신료들의 도움으로 왕의 자리에 오른 인조로서는 주화파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국력이 커진 청을 무시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인조의 선택

 

김상헌 역할을 맡은 배우 김윤석
 

인조는 결국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잇따른 청군의 공격으로 성이 허물어지고 주전파가 상황을 변화시킬 방법을 내놓지 못하자 인조는 주화파의 주장에 따라 청에 항복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청이 조선에게 신하로서의 예의를 갖출 것을 원하면서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굴욕적으로 항복한다.

 

영화 ‘남한산성’에서는 김상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인조실록 34권에는 김상헌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를 했으나 실제로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다고 기록돼 있다.

 

심소희 기자 sohi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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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1 23:02:3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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