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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 보물찾기] [한국사 보물찾기]‘조의제문’ 역사 이야기
  • 어린이동아 취재팀
  • 2017-03-15 22: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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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이 뿔난 이유는?

[한국사 보물찾기]‘조의제문’ 역사 이야기

2주에 한 번씩 ‘한국사 보물찾기’가 연재됩니다. 국보, 보물, 사적과 같은 우리 문화유산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알기 쉽게 풀이 해주는 코너입니다. 우리 문화유산도 배우고 한국사 상식을 쑥쑥 높여 보아요.

 

 

조선시대 의적(탐관오리의 재물을 훔쳐다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의로운 도적) 홍길동을 다룬 MBC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에 최근 ‘조의제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등장하면서 조의제문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어린이들이 많습니다.

 

조의제문(弔義帝文)이란 ‘의제의 죽음을 슬퍼하는 글’이란 뜻. 여기서 ‘의제’는 중국 초나라의 회왕을 부르는 다른 명칭이지요. 조의제문은 조선전기의 학자 김종직이 세조를 비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쓴 글이랍니다.

 

드라마에서 홍길동(윤균상)은 자신의 아버지를 모함했던 왕족 충원군(김정태)에게 복수하기 위해 조의제문을 이용합니다. 홍길동은 충원군의 방에서 조의제문을 몰래 빼내어 왕(김지석)에게 넘기지요. 조의제문을 본 왕은 ‘충원군이 나의 할아버지인 세조를 모욕했다’며 크게 분노하면서 충원군을 유배(죄인을 외딴 곳으로 보냄) 보냅니다.

 

실제 역사 속에도 조의제문이 등장합니다. 이 조의제문은 조선시대에 피바람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지요.

 

 

조카를 왕에서 몰아낸 세조를 비판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김종직은 의제가 나오는 꿈을 꾼 뒤 의제의 죽음을 슬퍼하는 글을 썼습니다. 의제는 중국을 모두 차지하려는 야망을 가진 초나라 장군 항우에게 목숨을 잃은 비운의 인물이지요. 한나라의 왕인 유방은 원통하게 죽은 의제의 복수를 위해 항우와 5년에 걸친 전쟁을 치렀고, 결국 유방이 항우를 무찌르고 중국을 통일하게 됩니다.

 

조의제문은 표면적으로는 의제의 죽음을 슬퍼하는 내용이지만, 사실은 조선의 7대 왕인 세조를 비난하는 속뜻을 담고 있습니다. 세조는 자신의 조카이자 6대 왕이었던 어린 단종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된 인물이지요. 김종직은 억울하게 왕에서 쫓겨난 단종을 의제에, 왕위를 빼앗은 세조를 항우에 빗댐으로써 “세조가 왕이 된 과정은 정당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조의제문은 김종직이 숨지고 6년 후 큰 문젯거리가 됩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연산군은 김종직을 부관참시(무덤에서 꺼내어 목을 베어버림)하지요.

 

 

“내 할아버지를 비난하다니”

 

그럼 연산군은 왜 조의제문을 보고 격노하게 되었을까요?

 

연산군은 조선의 10대 왕. 연산군 때에는 신하들이 ‘훈구파’와 ‘사림파’로 갈려 서로 맞섰지요. 훈구는 조선이 세워질 때부터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하던 사람들로, 이들은 세조가 왕이 될 때에도 세조를 도왔지요. 반면 사림은 연산군의 아버지인 조선의 9대 왕 성종 때 만들어진 세력. 영남지역에서 학문에 몰두했던 학자 김종직과 그 제자들을 성종이 한양(서울)으로 불러와 벼슬을 주면서 생겨났지요.

 

훈구와 사림은 서로 미워했습니다. 사림은 훈구를 “권력에 눈이 멀어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하는 자들”이라 비난했고, 훈구는 사림을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여겼지요.

 

연산군은 훈구와 사림 중 어느 쪽을 더 좋아했을까요? 바로 훈구였습니다. 자신의 할아버지인 세조가 왕이 되도록 도왔던 사람들이었으니까요. 반면 사사건건 임금에게 바른 말만 하는 사림은 매우 꺼림칙하게 여겼답니다.

 

연산군이 사림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잘 아는 훈구파는 연산군을 화나게 함으로써 사림파를 제거해 버리기로 마음먹습니다. 조의제문을 이용한 것이지요. 훈구파였던 이극돈이 성종 시절의 역사를 정리하던 중 조의제문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 연산군에게 알린 것입니다.

 

“김종직이 이끌었던 사림파가 나의 할아버지 세조에 대해 충성스럽지 않은 마음을 가졌다”면서 분노한 연산군은 김일손을 비롯한 김종직의 제자들을 옥에 가둡니다. 김일손이 쓴 사초(역사책의 자료가 되는 원고)에 조의제문이 있다는 이유로 김일손은 목숨을 잃게 되지요.

 

1498년,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으로 사림이 목숨을 잃은 이 사건을 ‘무오사화’라고 합니다. ‘무오년에 선비들이 화(재앙)를 입은 일’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김보민 기자 gomin@donga.com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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