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그랜드슬램’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박인비(27·KB금융그룹)가 메이저 최다승 기록을 깨뜨리기 위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골프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이란 한 선수가 활동기간 중 시즌에 관계없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메이저 대회 4개를 모두 우승하는 것을 말한다.

 

박인비는 US여자오픈(2008·2013년),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2013·2014·2015년), 나비스코 챔피언십(2013년)에 이어 최근 브리티시오픈 우승까지 차지해 아시아인으로선 최초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역대 여자 골프선수 중 메이저대회 최다승 기록은 15승. 지금까지 메이저 대회에서 박인비가 가져온 트로피는 총 7개다. 앞으로 8번 이상 우승한다면 최다승 기록을 달성할 수 있는 것. 이렇게 대단한 기록을 세울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힘들어도 포기 안 해

 

국내 대회에 나가기 위해 4일 귀국한 박인비는 인천국제공항 인터뷰에서 “실패를 통해 소중한 가치를 배웠다”고 말했다. 좌절의 아픔이 대기록을 세우는 결정적 힘이 됐다는 얘기다.

 

만 19세인 2008년에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박인비는 이 대회에서 역대 가장 나이가 어린 우승자로 많은 사람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너무 일찍 ‘천재’로 주목받은 부담감 때문인지 이후 4년 동안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박인비는 골프를 포기하지 않았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남편의 도움을 받아 잘 되지 않는 골프동작을 매일같이 연습했다. 결국 2013년에 메이저대회 3연속 우승을 하며 다시 일어나는데 성공했다.

 

슬럼프(자기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부진한 상태)는 또다시 찾아왔다. 올 시즌 대회를 앞두고 마지막 점검을 위해 나선 경기에서 몸 상태가 흐트러지며 낮은 성적을 기록한 것. 이후 박인비는 심한 허리통증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꾸준히 마사지를 받으며 몸 상태가 나아지기 위해 힘썼다. 끝까지 인내하고 노력한 결과 마침내 대기록을 달성한 것.

 

박인비는 한 인터뷰에서 “경기를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열 번쯤 찾아왔다”며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나를 믿고 마음 비워요”

 

실력이 있는 사람도 부담을 크게 느끼면 실전에서 실수를 해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 박인비는 ‘꼭 좋은 결과를 내야지’라는 부담감을 버리고 차분한 상태로 최선을 다해 이번 브리티시오픈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 경기에서 박인비는 큰 고비를 맞았다. 경기 초반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우승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품은 것이 독이 된 것. 우승에 대한 욕심이 커지자 그는 조급해졌고 연이은 실수를 했다고.

 

그러자 박인비는 생각을 바꿨다. ‘나 자신을 믿고 욕심부리지 말자’는 마음을 먹었다고. 이런 생각은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긴장한 골퍼 대부분은 스윙(공을 치기 위해 골프채를 휘두르는 동작)이 작고 빨라지며 퍼팅(공을 구멍에 넣기 위해 치는 것)은 짧아지기 마련인데 박인비는 긴박한 순간에도 전혀 변함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번번이 뒷심 부족에 허덕여 실패했던 앞선 두 번의 브리티시오픈 때와는 달랐다.

 

박인비는 “그동안 지나친 부담감에 시달렸다”면서 “올해는 오히려 마음을 비웠던 덕분에 잘 풀렸다”고 말했다.

 

▶정민아 기자 mina@donga.com